언젠가 앨라바마 북 페스티발에서 어떤 작가가 “작가의 기쁨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쓰는 것” 이라고 했을 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른 작가가 “자신이 아는 것, 자신이 체험한 것을 쓸 적에 독자들이 감동한다” 라고 했을 때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그 동안 즐겁게 내가 아는 주위 사람들의 이야기를 썼고, 더러는 직접 보고 경험하며 살아온 이야기를 썼다. 어떤 주제였던, 그 주제에 충실했고 내가 가졌던 의문을 읽는 독자들도 가지길 바랬다.
그런데 지난달 나에게 일어난 일을 쓰자니 너무 힘들어서 여러 번 컴퓨터를 껐다. 나의 변화가 살아가는 과정의 하나이려니 하고 마음 먹어도 그 적응도 힘들지만 표현도 역시 힘들었다. 달팽이 속으로 숨듯, 안으로만 움츠리며 처음의 충격에서 완전히 벗어 나질 못한 채 우울한 날들을 많이 보냈다.
지난달 초, 뉴욕 가려고 공항 가는 길에 갑자기 어지럼증에 비틀거렸다. 식은 땀이 나고 몸의 균형을 잃었다. 그런 상태로 집을 떠날 수가 없어서 남편더러 병원부터 가자고 했다. 갑자기 어지러웠다 했더니 간호원이 우선 혈압과 온도를 재었다. 전에 한번도 그렇게 올라가 본 적이 없는 상상외로 높은 치수의 혈압이었다. 한 30분 진정하며 여러 번 혈압을 재었고, 그리고 의사와 만날 예약을 했다.
비행기 출발 시간이 1시간도 남지 않아서 망설였다. 혼자 여행하기가 불안했지만 끌리듯 반가운 옛 친구들 만날 흥분으로 공항으로 향했다. 조심하겠다고 남편에게 약속하고 속으로 줄곧 “Hail Mary” 를 외치며 비행기를 탔다. 애틀란타를 거쳐 뉴욕에 도착할 때까지 나는 여러 기도문을 외우며 내 몸을 달랬다.
뉴욕에서의 며칠, 나 자신을 다독이며 조심했다. 전처럼 여행지에서 열광하지 않으려고, 땅 가까이 나를 잡았다. 그리고 돌아와서 며칠 혈압을 잰 후에 의사를 만났다. 병원에서 잰 혈압이180이 넘는 숫자가 나오자 의사는 당장 약을 먹어야 한다고 했다. 평소에 약 먹는 것을 지독하게 싫어해서 비타민도 별로 먹지 않던 나였다.
역시 나는 내 아버지의 딸이었다. 아버지는 생전에 고혈압으로 고생했고, 위로는 오빠 둘과 언니가 현재 고혈압 약을 먹는다. 나는 그 동안 어머니를 닮았다고 믿었다가 이번 아버지의 이 선물을 별로 반갑지 않게 받고 당황했다.
이것은 천방지축, 겁 없이 자유롭게 살며 생활하던 내 동적인 라이프스타일에 제동을 걸었다. 의사는 먹고 자고 활동하는 것에 대한 많은 질문을 한 후에 바꾸어야 할 점들을 지적했다. 그리고 고혈압에 따라온 다른 성인병 증상들에 대한 경고를 주었다. 본격적인 생활자세의 변화에 들어갔지만 처방 받은 약이 혈압을 정상으로 내려주지 않아서 2주 후에 약을 바꾸었다.
먹는 음식을 주의하게 되었고, 커피를 줄였다. 일주일에 3번 정도 하던 운동을 매일 하고, 새벽 1-2 시에 잠자던 버릇도 밤 11시로 바꾸었다. 처음 얼마 동안은 거북스럽고 괴로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바꾼 생활에 조금씩 적응되었다. 목 뒤로 올라가던 열기도 차츰 사라졌다. 그리고 한 지인의 소개로 일주일에 두 번 요가까지 보태며 몸 돌보기에 본격적으로 몰두했다. 오랫동안 군인 노릇하면서 건강을 저축했다고 믿었던 것은 착각이었다.
병은 자랑하라고 했다던가. 가족 친지들에게 나의 변화를 알렸더니 친정어머니는 대뜸 “하느님 감사합니다” 했다. “앞으로 평생 약을 먹어야 한다는데 웬 감사?” 했더니, “미리 경종을 주셨으니 감사해야지” 하셨다. 사실 혈압이 높은지 모르고 다니다가 어느 순간 어떤 일을 당했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을 하면 아찔해진다.
그러나 가장 힘든 것은, 몸의 변화가 아니었다. 변화를 몰고 온 원인 이었다. 세월의 흐름이었다. 동적인 생활에서 정적인 생활로 옮겨감 이었다. 성큼 다가오는 죽음의 두려움을 느낀 정신적인 고통이었다.
이제 한 달이 되었다. 7월 달의 나와 9월 달의 나는 전혀 다른 여자 같다. 새로운 나로 태어나면서, 나이 먹고 성인병을 가졌음을 받아들이려고 애쓴다. 그리고 조심하라고, 내 자신을 사랑하라고 경종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 드리며 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