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를 다니지 않으면서도 크리스마스 계절을 좋아한 어린 시절에 크리스마스의 의미는 몰랐으나 산타클로스의 전설은 믿었다.  그저 보기만 해도 좋은, 붉은 산타클로스 옷을 입은 풍성한 몸매의 노인 무릎에 앉고 싶었다.  그리고 가지고 싶은 모든 것을 청하고 싶었다.  어릴적에 왜 그렇게 가지고 싶은 것이 많았는지 모르겠다. 

지혜가 주렁주렁 달린 길고 하얀 수염, 그리고 코에 위태롭게 걸린 작은 안경 너머로 미소가 담긴 다정한 눈동자.  그 눈빛에는 세상의 모든 아이들의 소망을 들어주는 해결사의 자상함이 있었다.  이 땅 위에서 산타클로스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교회를 다니며 크리스마스에 대한 진정한 의미를 알게 된 후로도 나는 여전히 착한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는 산타클로스의 신화를 믿는다.  “Yes, Virginia, there is a Santa.”에 전적으로 동감하며 산타클로스가 주인공인 영화보길 좋아한다.  가슴 훈훈한 내용을 보면서 크리스마스에 갖고 싶은 물질적인 것들은 잊어 버리고 마음이 행복한 뒷맛을 즐긴다. 

이런 엄마에게서 태어난 딸들도 산타클로스를 무조건 믿었고 해마다 산타클로스 흉내를 내는 부모를 의심하지 않았다.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과자와 우유를 작은 테이블에 준비해 놓고 잠자리에 들며 사슴들이 이끄는 마차를 타고 찾아올 산타클로스를 의심하지 않았다.  새벽에 눈 비비고 나와서 크리스마스 트리 아래의 선물을 찾는 것 보다 과자가 없어진 것에 환호하던 딸들이 얼마나 사랑스러웠는지 모른다. 

그런데 어느 해부터인가 딸들이 트리 아래의 선물박스에 더 관심을 보이면서 과자는 사라졌다.  쇼핑몰에 딸들을 데려가 산타의 무릎에 앉히고 열심히 사진을 찍었던 적부터 였던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바쁜 산타클로스를 도와 쇼핑하던 부모를 눈치 채면서 였던지, 아니면 학교에서 아이들과 어울리며 세상물정에 영리해져서 였는지도 모른다.

사춘기에 들어선 딸들이 아예 노골적으로 “Dear Santa,”가 아니라 “Dear Parents,” 하고 크리스마스에 갖고 싶은 품목들을 열거할 때 쯤부터, 우리집의 크리스마스 장식은 딸들이 맡아서 했다.  해마다 개성있게, 세월이 지나면서 조금씩 세련된 장식을 하던 딸들이 사촌들과 슬쩍 산타클로스 흉내를 내는 것에 흐뭇하고 즐거웠다.

딸들이 다 커서 집을 떠난 후에도 나는 그들이 돌아와 크리스마스 장식하길 기다렸다.  연말에 집을 찾아온 딸들도 그것이 자기들의 책임인양 어김없이 잘 했다.  올해 큰 딸은 시집이 있는 미네소타로 갔고 작은 딸은 한국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내게 되어서 처음으로 아무도 오지 않는다.  추수감사절 후로 이 집 저 집 크리스마스 장식한 것을 보면서 “올해는 어쩌나…” 걱정을 많이 했었다.   

나처럼 속이 허전했던 남편이 내가 텍사스로 여행간 사이에 우리집 밖에 크리스마스 장식을 해서 나를 놀라게 했다.  그리고 실내의 장식은 내 몫이라고 했다.  며칠을 뜸을 들이다가, 조촐하게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돋우는 장식을 했다.  딸들이 그리워서 집 앞의 사진을 찍어서 이메일로 보냈다. 

집에 와 함께 크리스마스를 보내지 못해 미안하다는 연락과 함께 집이 그립다는 답장들을 받고 흐믓했다.  심술궂은 엄마는 딸들이 여전히 산타클로스를 믿고 있음에, 착한 아이들로 살고 있음에 행복하다.  이제 성인이 된 딸들이 어디에선가 산타클로스 흉내를 내는 것이 즐겁고 그리고 크리스마스의 진정한 의미를 알고 자선행위를 하는 것이 고맙다.

사랑을 나누는 성탄절에 아기 예수의 탄생과 그 의미를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네 생활에 주어진 축복에 감사한다.  이번 성탄절에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잠시라도 각자가 처한 고난에서 평화를 찾기를 간절히 원한다.  더 보태서, 산타클로스가 영원히 사람들의 마음에 살아 있어서 모두 일년 내내 착한 일만 했으면 좋겠다.   St. Nicholas, Thank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