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 뉴욕에서 열린 대학 총동문회에서 한 선배가 참석한 모든 동문들에게 김을 주셨다.  일본에 김 공장을 가지고 계신 선배는 미국에 있는 많은 일식집에 수시 김을 제공하는데 그 김 맛이 보통이 아니라고 했다.  뉴욕에 사는 다른 동문들은 벌써 그 김 맛을 보아서 잘 알고 있었다.

품질 좋고 맛이 좋다는 김을 혼자만 먹을 수가 없어서 그 동안 잘 보관했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에 많은 가족들이 모일 때 가지고 갔다.  크리스마스 이브의 저녁을 그 선배가 준 김으로 김밥파티를 준비했다.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에 웬 김밥이냐고 툴툴하던 동생도 짜르지도 않은 김밥 뭉치를 세 개나 먹었다.

김밥을 썰어서 가족 마다 숫자의 접시에 예쁘게 담은 것들이 테이블을 가득 채웠다.  켈리포니아 롤 비슷하게 만든 색깔 밝은 김밥들은 그저 보기에도 침이 흘렀다.  일을 마치고 온 어른들과 크리스마스라 집에온 조카들이 모여서 맛있게 김밥을 먹었다.  아무리 미국에서 오래 살았어도 우리는 김밥에 자석처럼 끌리는 한국인들이 아닌가. 

이민 1세들은 어릴때 소풍 갈 적에만 먹었던 김밥에 얽힌 아름다운 추억들로 김밥 먹기를 좋아 하지만 모두 이곳에서 태어나 성인이된 이민 2세들은 엉겁결에 김밥 좋아하는 버릇을 가졌다.  그런데 조카들이 김밥을 미소 국에 담구었다 먹는 것을 보면서 묘한 기분이 들었다.  앞으로 이민 3세가 생기면...그 아이들은 어떻게 김밥과 사귈지 궁금했다.

김밥으로 푸근한 몸과 마음을 쉬었다가 자정 미사에 참석했다.  진실로 고요한 밤이었다.  미시시피 바닷가 마을의 작은 성당은 아름다운 포인세티아 꽃들로 온통 붉게 밝히고 있었다.  세상 모든 움직임이 멈추었지만 깨어있는 의식들이 모여서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했다.  온 성당을 쩌렁하게 울리는 노 신부의 목소리가 모두의 의식을 중심으로 모았다.  덕분에 은혜를 잔뜩 받고 우리는 기분좋게 밤길을 헤치고 돌아왔다.

미시시피에서 친정식구들과 크리스마스를 보낸 후에 앨라바마 집으로 돌아와서 연말 준비를 하는데 오늘 UPS 배달이 왔다.  커다란 박스가 뉴욕에서 온 것이었다.  그렇잖아도 폭설로 어지러운 그곳에서 누가 보냈을까 궁금해서 박스를 열었다. 

하얀 종이에 매직 펜으로 굵게 적힌 글이 눈에 확 들어왔다.  생의 11월 초순에 이른 선배님이 아직 10월을 즐기는 후배에게 맘껏 즐겁게 살라는 충언과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살라는 편지였다.  선배님의 성격처럼 활달한 글씨를 보면서 가슴이 짠했다.          

여름에 주신 김으로 크리스마스에 가족들과 모여서 김밥파티할 계획이라는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냈더니 선배님은 그 맛있는 김을 잔뜩 보내주셨다. 박스에 가득찬 김들을 보면서 선배님이 보여주신 사랑 나누기에 가슴이 뭉클했다.  내가 배워야할 인생수업 이었다.

얼른 종이에 10여명의 지인들 이름을 쭉 적었다.  나도 선배님이 보내주신 김으로 사랑 나누기를 할 생각하니 저절로 흐믓했다.  콩 하나도 나누어 먹는다 했는데, 맛 있는 김들을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나누어 먹게 되니 얼마나 좋은가.

선배님...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