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가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하는 사건들을 본다.  더러는 언급할 가치도 없는 일이지만 어처구이 없는 사건을 계기로 일어나는 변화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는 일이 있다.

비록 풋볼이 종교로 추앙되고 앨라바마 대학과 어번 대학의 풋볼 게임에 얽힌 응원 경쟁이 심각한 수위를 오르내리지만 이번 사태는 진실로 어이가 없는 사건이다.  지난 11월에 두 대학의 연례 게임인 ‘Iron Bowl’ 에서 어번 대학팀이 앨라바마 대학팀을 이긴 후에 일어난 사건이었다. 

올 2월 중순에 지역 신문 1면을 장식한 기사가 있었다.  어번 대학에 있는 수령 130년이 넘는 두 떡갈나무가 독살되어서 죽어가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이 나무들은 특히 어번 대학팀이 풋볼게임에 우승하면 대학생들이 수 많은 화장지를 던져 장식하며 축하하던 상징적인 나무들 이었다.  지난 1월 10일에 어번 대학 풋볼팀이 전국 챔피언이 되었을 적에도 바로 그곳에서 성대한 축하 파티가 열렸다. 

올 1월 말에 이 나무들 둥치 아래에 강한 제초제인 화확약품을 주었다고 라디오 방송국에 전화한 남자가 있었다.  그의 발언에 따라 이 나무 아래의 흙을 조사한 대학측에서 토양에서 독극물을 추출하면서 그것이 장난 전화가 아니라 사실임이 알려졌다.  워낙 강한 독극물이 뿌리로 번져서 도저히 나무들을 살릴 수가 없으리라는 뉴스에 충격을 받은 많은 어번 대학생들이 그곳에 모여서 죽어가는 나무들에 애도의 뜻을 표했다.

대학측은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총 동원해서 나무들을 살릴 여러 방안을 강구했고 팬들도 꽃과 기도문등으로 나무들을 장식하며 애정의 표시를 쏟았다.  대학측은 독살되는 떡갈나무들 주변의 나무들에 피해가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기존의 흙을 모두 대체시키기도 했다.    

어번 대학생들과 졸업생들의 분노와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그 독극물을 뿌린 사람이 앨라바마 대학 풋볼팀을 응원하는 62세의 남자라는 보도가 나왔다.  젊은 철부지 아이들의 장난이 아닌 점에 온 앨라배미안들이 놀랐다.  이 어이없는 사태에 앨라바마 대학생들이나 응원팀들도 함께 경악했었다. 

그리고 이번 기회를 통해서 어번 대학생들과 졸업생들 그리고 어번 응원팀의 단결이 더욱 결속되었다.  올리브 브랜치를 들고 어번 대학팀과 단합한 앨라바마 대학팀 후원자들은 이 나무를 살리기 위한 기금까지 모금하며 활발하게 어번 대학생들과 한마음으로 친선을 강화했다.

그런데 어느날 한 어번 졸업생이 그의 집 앞뜰에 자라는 작은 떡갈 나무를 소개했다.  이 독물 중독된 떡갈나무에서 떨어진 도토리들로 싹을 내어서 키운 어린 묘목이 사람 키 만큼 자란 것이었다.  그가 대학생활의 추억으로 키우며 ‘Little Aubie’라 부르는 이 나무가 소중하게 사람들에게 다가왔다. 

이 나무는 어번대학 식물학과에서 2002년 부터 이번에 중독된 떡갈나무들에서 떨어진 도토리들을 식물원에서 배양시켜 싹을 내고 나무들로 키워온 것들 중의 하나였다.  훗날 역사적인 이 떡갈나무들의 수명이 다 되면 대치하려는 목적이었으나 그동안 원하는 졸업생들에게 판매해 왔다.  이제 작년에 수확한 도토리가 마지막이 되었는데 그 모묙을 원하는 주문이 쇄도해서 제비뽑기로 판매하기로 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나도 언젠가 멕스웰 부대 식물원 책임자로 있는 친구가 온실에서 배양시키던 도토리들을 본 적이 있다.  적당한 기온과 습기에 젖은 천 안에서 새초롬하게 싹을 내던 도토리들이 얼마나 신기했던지 오랫동안 지켜 보았었다.  많은 보살핌과 인내가 함께 있었다.    

자신과 같은 신조를 갖지 않으면 무조건 미워하는 풍조가 어디 이 풋볼팀들의 응원대만인가.  슬프게도 이런 풍조가 정치, 경제, 사회 각 분야에서 만연한 것이 오늘의 우리 사회이다.  상대에 대한 이해와 양보는 고사하고 극렬한 행동도 불사하는 이런 질투와 미움은 언제쯤 사라질건가.

이번에 대배심이 그의 죄를 인정해서 그가 재판을 기다린다는 기사가 나왔다.  이제 범죄자로 몰리는 상황에도 법정에서 응원하는 앨라바마 대학팀을 위해서 “Roll Damn Tide” 를 외친 나이 62살의 남자를 보며 새삼 나이가 들어도 어처구니 없는 일을 저지르는 인간의 허술함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