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고메리에서 1시간 반쯤의 운전거리에 있는 버밍햄 식물원에는 더위와 아랑곳없이 꽃과 나무들로 가득한 싱싱함과 평화가 있었다.  그곳에도 여름의 기승이 한창이었다.  화끈하게 더운 햇살을 창이 넓은 모자로 가리고 버밍햄 식물원을 내집 뒤뜰인양 천천히 걸었다.  이곳은 대도시의 식물원처럼 거대한 지역이 아니어서 다니기 좋고 또한 다양한 성격의 정원들이 흩어져 있어서 아기자기한 맛도 있다.

식물원 입구 근처에 사람의 노력으로 가꾼 장미 정원에서 퍼뜨린 향긋한 향내가 식물원 동서남북으로 기분좋게 퍼져 나갔다.  재미있는 이름들을 보다가 내가 좋아한 배우의 이름이 있는 노란 장미꽃 앞에서 멈추었다.  ‘Henry Fonda’, 그의 잔잔한 미소가 담겨져 있는듯 웬지 친근감을 주는 꽃이라 그 앞에서 조금 더 머물었다.  이 장미 정원 한쪽에서 영원히 춤을 추고 있는 한쌍의 조각품 제목이 ‘Last Dance’ 인 것은 우연이 아니리라.   

온도가 100도에 가까운 날씨라 식물원을 찾은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정원을 가꾸는 몇 사람이 간혹 눈에 띄였다.  새소리 바람소리도 흐릿하였고 도시의 소음도 식물원을 비켜갔다.  곳곳에 마련된 벤취들이 주변 환경에 어울리는 디자인들이라 앉아서 쉬면 나도 그 일부가 되었다.  혼자서 식물원 곳곳을 방황하는 재미는 솔솔했다.  눈에 담기 아쉬운 곳은 사진으로 담으면서 아름다운 정경과 꽃들에 저절로 탄성이 나왔다.  주변에 아무도 없음에 한껏 자유로웠다. 

식물원의 남쪽에 크게 자리한 일본정원에는 버밍햄 시와 인연을 맺으면서 일본인들이 가져다 심은 나무들이 많았다.  잘 가꾸어 놓은 일본식 돌 정원과 호수의 정경은 웬지 이 남부에서 낯설지 않았다.  호숫가에 비스듬히 자란 weeping cherry 나무의 늘어진 가지들이 드리우던 그늘에 팔뚝 만한 잉어들이 들락였다.  

남부생활 정원을 어느 지인의 뒤뜰인양 정겹게 걷다가 꽃들 속에서 화사한 무궁화꽃을 보고 마음이 환해졌다.  이 꽃이 상징하는 많은 상념들이 한꺼번에 찾아 왔다가 다시 서서히 내속을 빠져 나갔다.  이곳 남부와 한국의 거리만큼 두 문화의 차이가 엄청난 탓이리라.  연꽃위에 앉은 한 마리 잠자리가 졸고 있어서 그곳은 조용히 비켜 주었다.  

향료 식물 가든에서는 짖궂게 갖가지 향료 식물의 잎을 따서 냄새도 맡고 또 입안에도 굴려 보았다.  동서양의 많은 식용 식물이 은근한 구미를 돋우자 점심을 걸른 생각이 났다.  그러나 내 발걸음은 계속 주변 정원으로 향했다.  여러 색깔의 밝은 빛으로 감싸인 야생들꽃들의 아름다움은 굉장히 매혹적이었다.  꽃들에 취해서 마냥 구비구비 휘어진 숲길을 돌다가 어디 산간 깊숙한 곳에 들어선 착각이 들었다.  인적이 워낙 없어서 조금 겁이 나기도 했다.  그러나 그곳에는 평화와 행복, 생의 기쁨이 있었다. 

1980년대에 새롭게 식물원을 변경시키면서 곳곳에 숨기듯 마련한 조각품들은 주변 정원의 성격과 잘 어울렸다.  이 많은 조각품들을 찾아 감상하는 것도 보물 찿기하듯 재미있었다.      

여름의 느긋한 여유를 한껏 즐기며 식물원을 한바퀴 돈 후에 불볕 더위를 식힐겸 들린 가든센터 도서관에서 다시 꽃과 나무들, 정원에 관한 다양한 잡지들을 훑어 보았다.  꽃과 나무, 내 눈과 마음은 여전히 행복했다.  마음의 휴식을 찾아 나선 식물원 방문에서 오히려 더 많은 기쁨을 얻은 셈이었다.  사람보다 자연과 가까이 사는 나의 남부생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