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53년 전인 1958년에 소련의 작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Boris Pasternak)의 소설 ‘닥터 지바고’ (Doctor Zhivago) 가 그 해의 노벨 문학상으로 선정되었다.  그 당시 소련에서 출판이 금지되었던 이 작품은 이탈리아로 밀수출되어 1957년에 출판된 후 세상 사람들에게 충격과 감동을 주며 소련 국내외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이 소설은 1965년에 영화로 만들어지면서 더 잘 알려졌다.  노벨상 선정 후에 급하게 영어로 번역된 이후 처음으로 작년에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와 ‘안나 카레니나’를 번역한 Richard Pevear 와 Larissa Volokhonsky가 영어로 새롭게 번역해서 출판했다.     

이 책을 읽고 싶은 것은 욕망이다.  하지만 요즈음 시력이 시들해서 두터운 책은 피하는 터이라 책 대신에  Books on Tape을 도서관에서 빌려왔다.  총 19 CD를 듣는 시간도 23시간 19분 걸린다.  그래도 러시안 혁명기를 겪으면서 열심히 살고 사랑한 시인이자 의사인 닥터 지바고의 삶을 다시 만나는 매력에 흥분한다.  굵직한 목소리의 내레이터가 작품에 나오는 인물들의 러시안 이름 소개로 부터 시작하자 예전에 본 영화의 장면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사춘기에 본 ‘닥터 지바고’ 영화는 나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영화는 혁명기를 정 반대의 자세로 맞이하던 두 남자를 사랑한 아름다운 라라와 한 편의 시 작품같이 살았던 닥터 지바고의 삶이 격동의 시절을 살았던 고통보다는 오히려 그 두사람의 사랑이 낭만적인 아름다움으로  장엄했던 대 서사시였다.  광활한 시베리아의 눈 덮힌 겨울 설경에 웅장하게 연주되던 ‘라라의 테마’ 음악은 지금도 가슴을 떨리게 한다.  남부의 더위를 식혀줄 고드름을 만지는 착각에 빠지도록 내레이터가 줄곧 나를 추운나라로 데려간다.    

그런데 이 작품만 아니라 무지개 색의 밝음을 찾으면서, 환경의 변화에 따라 생활의 패턴이 자의에 관계없이 바뀌어도 그 도전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끈질긴 삶의 열정을 묘사한 글을 읽으면 인간의 능력에 감탄하고 또한 내가 살고 있는 평탄한 환경에 감사하게 된다. 

특히 시나 수필을 읽으면 그 글을 쓴 사람의 마음을 엿보고 그들이 비밀스럽게 나누는 그들 자신만의 이야기를 가슴으로 듣게된다.  한 개인의 글속에 묻혀있는 고뇌나 번민, 아픔이나 기쁨까지 알게되면 얼굴은 본 적이 없어도 글 쓴 사람의 체온을 가까이서 느끼게 된다.  요즈음 중앙일보 전자신문이 매일 배달되는 덕분에 신문에 실리는 글을 읽으면서 애틀란타에서 글 쓰는 사람들을 만난다.  그들 중에 여성문학회 회원들의 글을 읽을 적에는 언젠가 기회가 되면 나도 그들과 교류하며 글을 쓰고 싶다는 희망을 가지곤 했었다.

그러던 차에, 최근에 전혀 예기치 않았던 일이 일어났다.  애틀란타 여성문학회 회장으로부터 만나고 싶다는 요청이 신문사를 통해서 왔다.  몽고메리에서 혼자 글을 쓰는 나에게 반가운 러브콜이었다.  글동지를 만나러 가는 기대로 주말에 애틀란타를 찾았다.  처음 만나지만 우리는 벌써 서로가 발표한 글을 통해서 조금 친숙해 있었다.  더우기 모여서 환영해준 여인들과 서로의 공통점을 연결하다보니 6단계 인연의 법칙 (Six degrees of separation)이 어김없이 적용되었다.

한글을 사랑하는 여인들의 눈빛은 하나같이 맑았다.  그들이 나누던 긍정적인 에너지와 글을 쓰면서 삶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몇 분이 준 시집과 산문집을 얻어와서 새벽이 되도록 읽었다.  진주알같은 언어들이 모여서 빛을 뿜어내는 섬세한 여인들의 살며 사랑하는 생의 찬가였다.  그 글을 쓰면서 진지하게 고뇌하였을 여인들을 생각하니 영화에서 닥터 지바고가 진지하게 시를 쓰던 자세가 생각났다.  기쁜 사실은 이제 나의 멘토가 될 분들을 많이 사귀게 되었으니 글 쓰는 것이 외롭지 않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