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한해를 맞았는데도 어제가 오늘같고 오늘이 어제같은 기분을 떨쳐낼 수가 없어서 곰곰 생각해 봤다.  무엇이 나를 이곳에 묶어 두고 있는지.  친정엄마를 닮아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격이라 늘상 부산스럽게 움직이고 또 타지를 많이 나돌아 다니지만 언제나 어김없이 돌아 오는 이곳에 대해서.   

재빠른 동부보다 몇년 뒤져서 변화 맞아 들이고 만사가 아주 천천히 돌아가는 이 척박한 시골에 왜 구태여 고집하고 뿌리내리며 살고 있는지.  자연환경의 경이로움이 풍부한 미국 50주 중에서 경제적 상황이 바닥에서 손가락안에 꼽히는 가난한 주, 이곳 앨라바마에 왠 애착심이 이렇게 많은가.

끈적한 사람과 사람의 정.  유별나게 정이 많은 남부문화와 남부 사람들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좀 어눅하다 싶어도 재치로 똘똘 뭉친 대화가 정 나누기에 기막히게 강한 세력을 발휘한다.  어디서 낯선 사람 만나도 조금 인사하다 보면 금방 친해져 버리는 버릇이 이곳 생활속에 있다.  좀 냉정한 북부 양키들과는 달리 어휘가 느슨하게 풀어져 있다 싶지만 그속에는 정을 주는 따스함이 있다.  그리고 땅에서 올라오는 눈송이처럼 순백한 목화밭의 순정이 있다.  

이곳 토박이 사람들, 모두가 이야기꾼들이다.  그들이 풀어 헤치는 남부의 일화들은 귀신이 담 넘어 가는 얘기나 도깨비 이야기들 처럼 참 재미있다.  순수하고 아름다운 잡화들을 얼마나 재밌게 둘러대는지 한참 듣다보면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떤것이 꾸며서 맞춘건지 도무지 알아 낼 수가 없다.  워낙 이야기를 좋아하는 나는 그저 그대로 믿어 버리게 된다.

이들과 죽 맞추고 오래 살았음이 은연중에 피속에 스며 들었다.  특히 Redneck에 관한 농담들이나 앨라바마대학이나 어번대학 축구팀에 대한 농담들은 천문학적 숫자로 다양한데 세상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농담의 내용이 수준급이다.  이들이 나누는 농담들이 지적인 미묘한 뉘앙스를 가진것이 아니라 일상의 생활속에 바탕을 둔 단순한 것들이라 더욱 많이 웃게 한다.  한마디로 보통사람들이 주인공들이라 친밀감이 강하다.

앨라배미안들의 흙에 대한 애착심도 지적해야 한다.  농부의 후손들 답게 자연에서 걷우어 들이는 농작물로 “사랑은 위를 통해서” 라는 진실을 일상에서 생활화했다.  특히 cheese grits, fried okra, corn bread, BBQ, sweet potato pie, peach cobbler, fried green tomatoes, banana pudding, wild muscadines, butter beans... 들은 이제 내가 이곳을 못 떠나는 중요한 의미가 되어 버렸다. 

그리고 이곳 몽고메리에 있는 ASF (Alabama Shakespeare Festival) 연극 극장.  연극을 좋아하는 나한테 이곳은 정신적인 여유를 주고, 걸프만 바닷가의 설탕같이 하얀 백사장과 따스한 바다는 신체적인 여유를 준다.  이렇게 남부의 여러 가지 환경들이 내 단순한 감각을 충분히 만족시켜 주면서 나를 이곳에 꽉 잡고 있다.

우리가 훗날 어느지역에 정착할려나 하고 가끔 남편과 의논한다.  이제는 조금 더 따스한 남쪽의 골프장 많은 바닷가를 선호하는 남편의견에 적당히 얼버무리는 대답한다.  늘상 중부의 4계절이 분명한 지역을 들먹이던 버릇이 슬그머니 사라졌다.

지금 사는 이곳, 몽고메리의 뒷골목까지도 익숙해서 생활이 편하지만 여행할때마다 뒷자리에 앉았던 어린딸들이 참 고집스럽게 묻곤하던  “Are we there yet?” 을 내 자신에게 물어 볼 때가 지금 같은 시간들이다.  하지만 이렇게 남부에 사는 굉장히 멋진 이유들을 재확인하면 이곳도 참 살기에 좋은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