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만나고 헤어지고.  다시 만남을 거듭하는 우리 생활에서 어떤 삶이 행복한 것인지 또는 어떤 삶이 불행한 건지 나는 아직 단정을 못한다.  하지만 아름답고 행복한 인생은 각자가 마음 먹고 행동하기에 달렸다는 지극히 평범한 진리를 실감케 하는 이웃이 있다. 

한 2년전에 Carol Channing이 몽고메리에 와서 특별 공연을 했다.  부로드웨이에서 공연된 “Hello, Dolly!”로 유명해서 1964년에 토니상을 받고 크게 활약했던 연예인인데 지금 나이가 80을 훌쩍 넘었는데도 여전히 그녀 특유의 아름다움 지키며 전국을 돌며 무대에 선다.  그녀의 공연을 보러 가면서 아직 그녀가 노래를 부를 수 있을까? 하고 궁금했는데 빈 좌석이 하나도 없이 매진된 극장안의 관객들을 그녀는 처음부터 사로 잡았다.

그녀는 지난 70년 이상을 무대 공연하며 차곡 차곡 모아온 많은 아름다운 추억들을 기억함에서 하나씩 건져냈다.  함께 무대에 오른 피아오 반주자와의 대화식으로, 예전의 힘들고 화사했던 경험들이 하나씩 이제는 눈부신 보석들로 변하여 관객들에게 나누어졌다.  대화 중에 그당시 그녀가 불러 유명했던 노래들을 관객과 함께 부르며 융단을 짜듯이 그녀의 삶이 펼쳐졌다. 

우연인지 미리 계획된 건지 모르지만 가끔 과거 얘기를 하다가 잊어 버리는 시니어 모멘트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반주자에게 “내가 지금 무슨 얘기를 하고 있었지?” 해서 기억을 되살리고 했다.  그런 순간들 조차도 너무나 인간적으로 접근해와서 그녀는 완전히 청중을 매혹 시켰다.

나중에는 개인적인 얘기까지도 나왔다.  2003년에 회고록을 출판했는데, 그녀가 첯사랑으로 7학년때 좋아했던 남자아이의 이름을 고백한것을 어떤 친구가 읽고 그 남자에게 연락을 했단다.  어느날 한 노 신사가 케롤에게 전화해 오고, 헤어진지 70년후에 다시 해후한 두 사람은 2주만에 약혼하고 바로 결혼해서 잠시도 헤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이 수줍어하는 노신사가 소개된후에 무대위에 올라가서 케롤과 함께 춤을 추는것으로 그날 저녁 공연이 끝났다.  함께 손을 잡고 천천히 스텝을 밟던 아름다운 두 사람을 지켜보던 우리 관객들, 모두 일어나 열찬 박수를 치면서 그 두사람이 나누던 따스한 사랑에 눈시울이 젖었고 가슴도 훈훈했다.

그런데 케롤의 경우처럼 특별한 사랑을 나눈 경우가 바로 내 옆에도 있었다.  교사생활 오래하다 정년퇴직하고 내가 일하는 곳에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멋쟁이 할머니가 있다.  자식들과 손자.손녀와 데이트 즐기며 큰 트럭을 운전하고 다니는데 봉사활동을 왕성히 해서 나는 그녀가 70대 중반이라 상상하지 못했다. 

몇년전에 그녀는 밝은 색상의, 남자를 만나는 여자의 우아한 옷차림을해서 우리들이 데이트중이냐고 질문을 많이 했다.  그당시 그녀는 표정도 밝았고 목소리도 더욱 활기가 있었는데…실제로 데이트 중이었다. 

그리고 몇달후, 그녀는 60년 만에 다시 만나 사귀던 예전 고등학교때의 애인과 조용한 결혼식을 올렸다.  너무도 행복해하는 그녀를 위해 우리는 진심으로 축복을 빌었다.  그후 우리는 그녀를 별로 보지 못했다.  이들 부부는 긴 시간이 걸렸지만 시에서 조금 떨어진 호숫가에 둘만을 위한 통나무집을 지어서 이사했다. 

어떤 행사에 활짝 웃고 참석한 두 사람은 오랫동안 함께 살아온 부부처럼 익숙하고 편안한 분위기를 보여주어서 그들을 지켜보던 우리는 질투도 하면서 함께 행복했었다.

언젠가 그녀가 사무실에 들러서 집들이도 할겸 모두 점심에 초대하고 싶은데 남편이 아프다는 우울한 소식을 알려줬다.  나이든 사람들이라 곧 회복하길 빈다는 인사말하고 잊었었다.  얼마후에 그녀가 다시 사무실에 연락해서 남편이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는 슬픈 소식을 전해 주었다. 

작년에 그 남편의 장례식에 참석해서 우리는 그들 부부의 짧았지만 너무나 아름다웠던 결혼생활에 대한 많은 얘기를 들었고, 그녀는 한동안 우울증에 시달렸다.  

만나서 사랑하고, 헤어진후 긴 세월 뒤 다시 만나 첯사랑을 되찿았던 축복, 이렇게 완숙한 사랑을 확인하며 나누었던 기쁨을 잃고 가슴 아파하는 그녀와 함께 우리도 한동안 가슴앓이를 했다.  남자들은 마지막 사랑을, 여자들은 첯사랑을 중시한다고 한다던가?  아무튼 이들 두사람은 첯사랑을 마지막 사랑으로 연결시킨 굉장한 축복을 받은 사람들이었다.

세월이 약이라고, 우울증을 털고 일어난 그녀가 우리들을 그녀의 호숫가 통나무집으로 초대했다.  한번도 통나무집을 들어가 보지 못한 나는 숲속 호숫가의 지극히 낭만적인 통나무집의 분위기에 흠뻑 빠져서 그녀의 잃어 버린 사랑을 새삼 아프게 느끼고 왔다.

이제 다시 사무실로 출근하는 그녀를 보면서 삶에 대한 내 의식이 많이 성숙해졌음을 느낀다.  된장찌개가 주는 구수함을 모르는 남편과 삐걱거리며 살아가는 나한테, 케롤 챈닝과 이 멋쟁이 할머니는 사랑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인생은 참 살아 볼만하다고 가르친다.  그리고 나이에 관계없이 우리 삶에 사랑이 얼마나 소중한가와 열심히 활동하는 적극적인 삶의 자세를 가르쳐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