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어디로 데리고 가느냐”고 계속 물으시는 친정 어머니를 미시시피에서 몽고메리 우리집으로 모시고 왔다. 며칠 가벼운 봄 나들이었다. 지난 몇 개월 어머니에게 많은 변화가 있었다. 예전의 총명함은 천진한 어린이의 순진함으로 변했고, 거동도 걸음마를 배우는 아이처럼 넘어질듯 위태롭다. 그리고 일상의 버릇을 많이 잊으셨다.

아침에 일어나셔서 사위얼굴은 기억나지 않지만 사위가 운전해서 일본과 북한을 여행하신 이야기를 해주셨다. 일본도 그렇지만 북한도 살 곳이 못되더라던 어머니의 북한여행기는 너무나 엉뚱해서 가족들이 많이 웃었다. “오늘 밤에는 남한을 여행하시는 꿈을 꾸세요. 그래야 고향을 가지요” 했더니 “남한이 어딘데” 하셨다.

미시시피에서 며느리가 전화해서 “어머님 오늘은 뭐하세요?” 하고 인사하니 “너한테 며칠 휴가 줄려고 여기 왔으니 푹 쉬거라.” 하셨다. 모두 놀랄 정도로 정상적이시다가 전화를 끊고 불과 5분도 되지 않아서 “얘들이 왜 아무도 전화를 하지 않지?” 하고 물으셨다. 

어머니를 모시고 예전에 몽고메리에서 자주 다녔던 곳을 찾았다. 가는 곳 마다 어머니는 낯선 곳을 보시듯 불안해서 두리번 거리셨다. 공원의 호숫가에서 아름다운 학과 오리 무리의 재롱을 본 후에 몽고메리 거리에서 화사하게 피어나는 진달래 꽃들을 보시며 “그것 참 곱다” 라 하셨다.

집으로 데려다 달라고 보채시는 어머니를 모시고 집으로 돌아오니 “여기 말고 우리집”으로 가시고 싶다고 하셔서 내 가슴이 무겁게 내려 앉았지만 울음을 참았다. “참 너희집 개 어디 갔느냐?” 고 물어셔서 “천국갔어요” 하고 대답하면서도 울음을 참았다. 희미하게 기억의 자락들이 잠깐씩 어머니를 찾아오면 얼마나 반가운지 모른다. 의자에 깊숙히 기대어 주무시는 어머니 옆에서 멀리 사는 딸들에게 이메일로 할머니의 근황을 알려주었다.

그러자 2주 전에 미시시피로 가서 할머니와 며칠 보내었던 큰딸이 그때 쓴 시를 보내서 기어이 나를 울렸다.

you sleep much of the day now
like a baby, your face
and figure have rounded
steps teeter totter
emotion visits fleeting
yet fierce upon your face
which used to animate with interest
in all details of the clan
 
neutral now
we search for flashes of humor, displeasure
provoke them to see
life remaining
precious now as it must have been
at the beginning

많은 손자손녀들 중에 유독히 할머니를 따르는 큰딸은 휴가를 내어서 정기적으로 할머니를 찾는다. 예전에 성경을 열심히 읽으시던 할머니를 기억하는 손녀가 지난 방문에 할머니에게 성경책을 읽어 드렸단다. 성경책을 펴들고 눈에 보이는 구절을 읽어 드렸다는데 주일에 목사님이 마침 그 구절을 설교하셔서 너무 기이했다고 한다. 세상에 우연은 없고 모든 것이 필연이라던 진리를 우리는 체험했다.

지난 90년 세월의 기억을 잊어버린 어머니는 아들딸 이름은 모르셔도 얼굴들은 기억하신다. 어머니에게 매일 자기 이름이 무엇이냐고 묻던 여동생도 이젠 더이상 이름에 연연하지 않는다. 빠르게 변하는 어머니를 옆에서 지키는 가족들은 이 잔인한 현실에 힘들게 적응하고 있다. 효자 효부의 극진한 돌보임을 받고 아침을 맞으시는 어머니가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는 날까지 이 땅에서의 여생을 편안하게 보내시도록 간절히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