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라바마 여자인 나의 둘째 딸과 결혼하겠다는 영국 손님에게 앨라바마의 최남단과 북부를 보여 주고 이제는 주 정부가 있는 몽고메리를 소개한다. 이왕이면 앨라바마의 총수인 주지사의 관저부터 보자고 했다. 주지사 부인의 배려로 우리가 관저 방문날짜를 잡은 날은 비가 심하게 내렸다.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약속시간에 맞추어서 도착한 우리를 주지사 부인과 안내자는 문앞에서 반갑게 맞아 주었다.

관저는 신고전주의와 19세기 전반기 그리스 건축 양식으로 1907년에 지은 웅장한 3층 건물이다. 정면의 거대한 기둥들의 하얀색이 우선 산뜻한 인상을 준다. 미적 감각이 대단했던 원 주인이 집 안밖의 구조에 세심한 배려를 해서 훌륭한 저택으로 지었다. 그 집을 주 정부가 1950년에 구입해서 모던 설비를 보탠 후에 주지사의 관저로 사용한다.

관저의 홀 중앙에는 431개의 축을 사용해서 중간에 양쪽으로 오르도록 꽃잎처럼 디자인된 계단이 있다. 마치 양 팔을 벌리고 손님을 반갑게 맞아주는듯 했다. 높은 천정에서 홀을 밝히던 수정 샹들리에는 전 세기에 뉴올린스에 있던 한 호텔에서 가져온 것이라는데 크기와 디자인이 저택에 잘 어울렸다. 계단앞에서 앨라바마의 문장이 짜여져 있는 카페트를 밟고 양쪽으로 환하게 터인 실내를 둘러보니 안온함이 안겨왔다.

회반죽으로 조각된 천정이나 떡갈나무에 체리나 마호가니를 끼워넣어 마루를 제조한 전 세기 장인들의 손끝이 야무졌다. 다이닝룸에서 앨라바마산 마호가니로 만든 식탁과 16 의자옆을 지나며 의자 쿠션의 커버에 놀랐다. 앨라바마 중부 도시의 바느질 회원들이 앨라바마의 변천사를 보여주는 장면을 자수실로 정교하게 꿰메어 그림을 그렸다. 귀퉁이에 바느질한 사람의 이름과 연도가 있는 커버를 하나 하나 보니 앨라바마 초기 테리토리 시절부터의 변화를 볼수 있었다.

식당 양쪽의 테이블 위에 번쩍이던 은 촛대와 펀치 세트는 주 정부가 1942년에 ‘USS Alabama’ 전함을 위해서 특별히 애국심을 북돋우는 디자인으로 만든것인데 그만 2차대전이 일어난 바람에 전함으로 옮기지 않고 그대로 주지사 관저에 보관했다. 그 옆에 18세기에 진달래와 동백나무를 미국으로 가져온 초기 정착자였던 두 프랑스인의 초상화가 나란히 걸려 있었다. 봄이면 밝은 색깔의 진달래 꽃들로 도시가 아름답게 장식되는 것이 바로 이들 덕분이었다. 그리고 동백꽃은 앨라바마 주 꽃이 되었다.

관저에 살았던 역대 퍼스트 레이디들의 초상화가 걸려있던 작은 거실을 거쳐서 홀 맞은 편의 음악실로 갔다. 현 주지사가 작은 그랜드 피아노에 앉아서 좋아하는 영화 ‘Forrest Gump’의 테마음악을 연주하고 또 노래도 부른다는 안내자의 설명에 미소를 띄웠다. 피아노 뒤에 날렵하게 디자인된 책장에는 앨라바마에 관한 책들, 앨라바마 작가들이 쓴 책들이 모여 있었다. 훗날 나도 책을 발간하면 필히 그 속에 한권 넣어야 겠다고 했더니 안내자는 “물론” 하며 기꺼이 답해 주었다.

이 음악실의 벽에 마주 보고 걸려있는 거대한 거울들이 마술을 부렸다. 한 거울 앞에 서면 놀랍게도 뒷 거울에 무한한 양의 거울이 비추어 보였다. 이탈리안 핑크 대리석 벽난로 옆 한쪽 벽에 전시된 호른은 남부연방국 대통령 제퍼슨 데이비스의 취임식날 ‘Dixie’ 노래를 연주한 악기여서 우리도 그 멜로디를 흥얼거리며 지나갔다. 음악실 옆 3면이 유리로 둘러 쌓인 가든룸 창 밖 아래로 숨겨진 작은 정원이 있었다. 테니스와 농구코트, 앨라바마 지도 모양의 수영장은 가든룸 창 밖으로 멀찍이 보였다. 집안을 보면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의 성품이 보인다고 했듯이, 앨라바마 주지사의 관저에는 앨라바마의 과거와 또한 앨라배미안들의 담박한 성품이 보였다.

관저 관광 후에 작은 응접실에서 우리는 주지사 부인과 오랫동안 환담했다. 지난 달에 한국을 방문한 그녀는 한국에서의 체험을 들려 주었고 또 받은 선물들을 보여 주었다. 나는 그녀가 한국에서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 온 것에 기뻤다. 저녁에 남편이 주지사 관저 구경 잘했느냐고 묻자 딸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관광은 조금, 엄마의 수다는 잔뜩” 이었단다. 하지만 영국 손님은 앨라바마의 역사가 담겨있던 관저에서 다정한 현 주인을 통해서 친절한 남부 인심을 맘껏 즐겼다고 좋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