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 기공식과 함께 이곳에 왔던 현대자동차 가족들이 슬슬 본국으로 돌아간다.  가끔 가족들을 뒤에 남기고 외롭게 돌아가는 아빠들이 있다.  아이들 교육문제로 별거하는 가족들을 보면서 “기러기 가족” 이 되는 상황을 알게 되었다. 

아이들 위해 좋은 학교따라 이사하고, 평생 헤어져 본 적없는 남편과 별거하면서 뒤에 남은 한 맹자엄마를 안다.  이 40대 엄마는 자신이 대학에 등록해서 유학생비자를 받아 공부하면서 혼자 3 아이를 키우겠다는 용감한 결심을 했다.        

그런데 며칠전 퇴근길에 반가운 전화를 받았다.  이 맹자엄마가 좋은 대학에 입학허가를 받은 딸의 기쁜 소식을 알려 주었다.  많은 기도와 눈물이 이 가족과 함께 있어서 늘상 아련하던 터였다.  복잡한 러시아워 교통속을 달리며 얼마나 즐거웠는지 모른다. 

사실 가족 상황은 살면서 경우에 따라 변하기도 한다.  나도 군인일때 가족과 떨어져서 생활한 적이 많아서 그 아픔을 잘 안다.  한번은 혼자 해외 근무할때 중간에 휴가를 내어서 집에 온 적이 있다.  질서없이 생활하는 딸들을 야단친후 방을 나서는데 작은딸이 언니를 달래는 소리를 들었다.  “걱정하지마, 엄마 일주일후면 떠나니까.”  그 충격은 오랫동안 나를 괴롭혔다. 

일년후 돌아와서 멋대로 혼자 일처리 하는 남편이나 두서없던 딸들의 생활속에 내 자리를 찿는데 몇년이 걸렸다.  풀어진 가족들 뭉치기가 쉽지 않았다.  딸들의 가슴에는 여전히 내가 비웠던 세월들에 대한 작은 원망이 있고, 내 기억속에는 끊어진 필름같은 딸들의 성장기가 있다.  하필 내가 집을 비웠을때 수두를 앓았던 작은딸은 가끔 그때의 섭섭함을 털어 놓아서 나를 미안하게 한다. 

한국의 기러기 아빠는 가족을 해외에 보내고 그 뒷바라지 하느라 한국에서 열심히 일한다.  그런데 우리 부부가 자주 만나는 일본 주재원들 중에 외롭게 생활하며 돈 벌어서 본국에 있는 가족들을 뒷바라지하는 기러기 아빠들이 있다.  아이들의 학교문제로 가족들이 일본에 남기로 했단다.  이곳에 파견 나오면 보통 4년 근무한다.  독신이 아닌 50대의 아빠들에게 이건 처연하게 긴 세월이다.     

남편은 일본 기러기아빠들과 골프치고 식당들 어울려 다니면서 자신도 독신인양 착각한다.  한국식당 가서는 홀아비라는 말도 배우고, 무엇이 재미있는지 중년남자 셋이서  청소년들처럼 잘 논다.  궁상맞지 않으려고 옷매무새에 신경쓰는 기러기 아빠들과는 달리 남편은 너무 외모에 관심없어 오히려 내가 무안할 지경이다. 

지난주말에 한 기러기 아빠가 그의 집으로 우리를 초대했다.  일본계 6사람이 모여 앉아서 샤부샤부 파티를 했다.  방4개의 커다란 저택에 혼자 사는 기러기아빠의 집에는 찬바람이 솔솔 불었고 테이블 위에는 어울리지 않는 접시들이 올랐다.  깔끔한 일본부인이 있었다면 어림없는 일이다.  일년정도의 캠핑 생활에 익숙한 기러기 아빠가 부엌에서 음식을 나르며 줄곳 머쓱하게 웃었다.  그래도 그동안 그가 익힌 음식 솜씨를 자랑했는데 음식도 담백했지만 순수하고 아름다운 마음이 더욱 맛 있었다.  

작년 가을에 BBC 뉴스가 일본 중년여성들의 새로운 질병을 크게 보도한 적이 있었다.  평생 바쁘게 집을 비우면서 밤 늦게까지 일하던 남편들이 정년퇴직하고 막상 집에 들어 앉으면, 그 부인들이 스트레스를 받아서 여러 질병같은 심한 정상들을 호소한다는 기사였다.  심지어 자살하는 여자들도 있다면서 그 상황이 심각하게 일본 전역에 퍼져 있다고 했다.

그 기사를 읽은후, 남편과 둘이서 잘못하면 4년후에 돌아갈 집도 없겠다고 이곳 사는 일본 기러기 아빠를 걱정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얼마전에 함께 식당에서 저녁을 먹다가 참 슬픈 농담을 들었다.  한 기러기아빠가 일본에 가족들 만나러 연초에 2주 휴가를 갖었다.  그런데 부인이 일주일만 있다가 돌아가라 하더란다.  “Out of sight, out of mind” 라더니, 아이들과만 사는데 익숙해져 버린 부인이 남편을 불편해 하더란다.  남편이 벌어 주는 돈으로 생활하면서 말이다.  허전하게 웃으며 술잔을 비우던 그 앞에서 내가 오히려 민망했었다.  그리고 집에 와서 남편이 무안할 정도로 화풀이를 한 적이 있다. 

한 남자의 인생에서 가족은 무슨 의미일까?  이 일본 기러기아빠에게는 무겁게 질머진 의무의 십자가 같다.  인생의 의미와 행복은 성공한 아이들을 따라 오는 걸까?  진정한 가족사랑이나 부부사랑은 어떤 형태로 유지되어 가는지…가정의 그림은 온 가족이 함께 찍은 가족사진에 멈춘것 같다.   

한국의 기러기아빠는 그래도 같은 문화권에 살지만 이곳에서 외롭게 홀로 사는 일본 기러기아빠들은 이중의 외로움을 견딘다.  만날때마다 이들의 목이 자꾸만 길어 보이는 것은 야위어가는 몸매탓이다.  샤부샤부 맛있게 먹고 놀다가 돌아 오는 길에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라고 읊었더니 남편이 무슨말이냐고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