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네이도 경보로 오전 근무만하고 일찍 퇴근했다.  사이렌이 요란스러울때, 벨과 나는 집안 깊숙히 있는 복도로 대피했다.  불안해하는 개의 머리를 내 가슴에 숨기고 우리는 밖의 세상이 조용해지길 기다렸다.  동네에서 사나운 개라고 소문났어도 험악한 날씨에만은 기가 죽는 개이다.  토네이도 대피하는 것은 남부에 살면서 생긴 버릇이다.      

개와 함께 숨어서,  허리케인 카타리나로 주인들과 헤어졌던 딱한 사연의 애완 동물들을 기억한다.  Humane Society of the US 의 동물구조대들이 파손된 집들에 갇혀 있거나 빈거리 헤메는 동물들을 대량 구제했다.  그리고 남부 여러 주의 동물 보호소들이 모두 나서서 애완동물들 보호와 주인 찾아 주기에 대단한 노력을 했다.    

그 당시 어딘가에서 애태울 주인들과 험악한 태풍과 홍수를 견뎌내고 생명을 지킨, 느낌 가진 동물들의 고통과 안타까움을 따갑게 느꼈다.  개 사랑을 가장 많이 받는 내 생활이어서 남의 얘기 같지가 않았다.  가끔씩 petfinder.com 에 오른 주인 찾는 동물들의 사진을 보면서 내 옆에 앉아있던 우리집 진돗개, 벨을 더욱 강하게 안아주곤 했다.  

어떤 설문에서 애완 동물 가진 미국인 10명 중에 7명이 동물들을 자식으로 취급한다고 했다.  딸들이 비운 집안을 채우고 우리 부부에게 규칙적인 생활을 유지토록 하는것은 우리집 벨이다.   

오래전에 텍사스 큰오빠네서 4개월된 진돗개 강아지 두마리를 입양해 올 때, 딸들이 Beauty and Beast의 주인공인 Leo와 Belle이름을 지어 주었다.  성격이나 특성이 유별난 개들과 함께 살다 보니 사람살이에 끼어든 개들과 개생활에 끼어든 사람들이 되어 우리집 하루가 아주 색깔있었다.

열정적으로 몸으로 부딪치던 리오와 조심스레 살짝 다가 오던 벨은 집 안밖에서 각자의 터를 잡고 한국개이면서도 한국말은 못 알아 듣는, 내 딸들처럼 적당히 이곳에 사는데 익숙해서 닭 삶아 밥 말아 주는것 보다는 치즈 조각과 구운 스테이크 덩어리를 더 좋아했다.

가끔 뒤뜰을 탈출해서 이웃 개들을 물거나 집앞을 걷는 사람들에게 뛰어 들어서 우리를 곤경에 빠뜨렸다.  덕분에 매번 병원비도 물고 경찰에서 경고장도 받았다.  개들을 없애든지 이사를 가라는 옆집 여자한테 둘 다 “노” 했다가 같은 성당에 다니던 이웃과는 원수처럼 되었다.  식구들에게는 무한한 사랑을 주어도 타인들에게는 철저히 냉정한 개들이라 무섭다고 이웃에 소문났다.  어떤이들은 걷다가도 우리집 앞은 피해 갈 정도로 두마리가 사납게 집도 잘 지켰다.

몇년전 리오가 암으로 죽은후 벨은 완전히 기가 죽었다.  처연하게 식구들 가슴을 파고 들며 누군가가 눈안에 있어야 안정을 했다.  혼자되니 더 이상 새들 잡으려 뛰지도 않고 뒤뜰에 나가기도 싫어했다.  우리 가족의 움직임에도 아주 민감하게 반응하며 불안하게 집안 여기 저기에 잠자리를 옮기다가 결국엔 내 침대밑에 자리를 잡았다.

그러던 벨이 얼마전에 10살 생일을 맞았다.  케이크 대신에 구워 준 스테이크로 행복해 하던 개와 마주 앉아 주절 주절 수다 떨던 자신을 보고 아찔했다.  나이든 건지, 딸들이 그리운 건지, 개한테 정이 든건지 모르겠다.  아무튼 내가 쏟아 놓는 얘기 다 들어주고, 한번도 대꾸 안하는 벨은 내 단짝이다.  집안 이리저리 다니는 나를 열심히 따라 다니며 내 작은 숨소리에 기대고 있다가 바늘가는데 실가듯이 어김없이 내 그림자된다.  한국계 미국개인 이 개도 나처럼 두세계 사이에서 가지는 허전함 느낄까.

가끔씩 딸들이 장거리 전화로 벨과 통화할때, 숨 죽이고 귀 세운채 가만히 듣는 벨을 보면 아주 진지하다.  우리가 보는 개들만이 아니라 개들이 우리를 어떻게 보는지 궁금할 때가 그런 순간들이다.  개들과의 교류를 통해서 사람들이 갖게 되는 깊숙한 기쁨과 슬픔, 어쩌면 개들 때문에 우리가 더 인간적일 수 있다.  

모든 지식, 모든 질문과 대답을 개는 자신속에 보관하고 있다고 하던 독일 소설가 카프카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지금 올드 앨라바마 타운에서 물레를 돌리는 친구를 위해 벨의 털을 모은다.  개털을 모아 주면 물레 돌려서 스카프나 조끼를 짜 준다고 했다.  절대적인 사랑을 주는 벨이 있어서 “Home is where the dog is” 라는 생활한다. 

밖의 날씨가 좀 잔잔해져서 리빙룸으로 나와서 TV를 켰더니 끔찍한 뉴스가 기다리고 있다.  여기저기의 사상자 소식중에 엔터프라이즈시의 고등학교 지붕이 날라가면서 8명의 죽음과 수십명의 부상자를 냈다고 보도한다.  가슴이 꽉 막힌다.  슬프게도 천재지변 앞에서 우리 인간은 너무도 무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