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한 단편소설이 있다. 카슨 맥컬러스 (Carson McCullers)가 오래전에 발표한 이 작품의 제목은 ‘나무. 바위. 구름. (A Tree. A Rock. A Cloud.)’ 이다. 우선 제목이 호기심을 끄는 작품이다. 이혼한 친구로 부터 사랑과 배신, 그리고 대화와 화해가 얽힌 이야기를 듣고 돌아 오다가 이 단편소설이 생각나서 다시 읽었다. 

심리 소설인 이 작품에서 전혀 다른 3 사람을 만난다. 12살의 순수한 신문배달원 소년과 세상물정에 닳고 닳은 간이식당의 주인, 그리고 카운터의 구석에서 이른 새벽에도 맥주잔에 코를 박고 있는 60대초의 외로운 노인. 그 노인이 흥미롭다. 노인이 소년을 불러서 불쑥 “사랑해” 한 말은 상큼하고 신선하다. 그는 낯선 아이를 옆에 앉히고 자신의 사랑 이야기를 들려준 후에 사랑은 어떻게 시작하여야 하는지 진지하게 설명한다.

한 여자를 사랑하며 자신의 완성같은 희열을 맛보았던 노인이 그를 배신하고 떠난 여자를 찾아 방황하다가 사랑에 대한 놀라운 진리를 깨달았다. 나무와 바위 그리고 구름을 좋아하면 모든 것을 사랑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이 스토리를 읽을 적마다 그 말은 이상한 마력으로 나를 사로잡았고 그리고 생각하게 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잃은 사랑과 또 그 사랑을 찾으러 수 년동안 전국을 헤매다가 깨달은 교훈을 순진한 소년에게 말하고 싶어한 충동이 무엇이었는지 이제는 조금 이해가 된다.

인간의 몸은 자연과 대화할 수 있도록 기류가 통한다는 말은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나무와 바위와 구름은 자연의 근원이다. 그러니 자연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자연의 일부인 사람을 사랑하는것은 당연하다. 줄기차게 자라는 나무, 꿈쩍않고 버티는 바위, 그리고 슬쩍 지나가는 구름. 이 세가지는 언어가 필요없다. 불변하는 행동만 가지고 있다. 이런 단순한 것들부터 사랑하는 것을 배워간다면, 복합적인 창조물인 사람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작가는 말하고 싶었던것 같다.

하지만 아무도 사랑은 어떻게 하는 것이라고 구체적인 불루프린트를 제시할 수 없다. 사랑에 대한 정의는 각 개인이 직접 체험하며 배우고 얻는것이다. 그 경우가 이성과의 사랑이라면 더욱 말할 나위도 없다. 여자와 남자사이처럼 미묘한 관계는 없다. 콩깍지가 떼어지고 나이가 들수록 또한 생활에 부딪히며 살다보면 불꽃튀던 사랑도 열기를 잃는다. 함께 수 십년을 사는 나의 남편과도 솔직히 내 완성을 느끼게해주는 희열같은 사랑을 한다고 말 하기가 어렵다. 한때 화끈했던 사랑이 이제는 서로에 대한 편안한 믿음 같은 것으로 변한것 같다.

얼마전 집을 비울적에 아침에 출근한 남편과 멀리 사는 딸들에게 간단히 ‘나를 찾는 여행을 떠난다’ 라고 이메일 통보하고 집을 나섰다. 정확히 어디로 가거나 언제 돌아온다는 정보 같은 것은 일체 남기지 않았다. 가족들의 걱정을 배려할 만큼 그당시 나의 마음이 안정되지 않았던 탓도 있었지만 평소 나의 말이나 하는 일에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는 남편에게 나도 비슷하게 행동하는 버릇 탓이었다.

‘땅위의 천국’에서 돌아와서 토박이 친구들을 만났을 적에 나의 외출이 화제였다. 자신이 어딜 가며 오후4시에 돌아온다고 남편에게 이야기했다가 좀 늦게 돌아왔더니 오후 5시쯤 남편이 경찰에 신고하고 여기저기 전화 문의하며 찾느라 야단을 피웠다는 한 친구는 내 남편이 어떤 반응이었느냐고 물었다. 나의 남편은 쿨한 남자여서 경찰에 신고는 고사하고 6일동안 나를 찾는 전화 한 통화 아무곳에도 걸지 않았다고 했더니 모두 깔깔 웃었다. 그것이 내 사랑의 현주소였다. 내가 자주 집을 떠나니 어련히 잘 돌아오겠지 하고 면역이 된 남편이다.

하지만 분명 달라진 것이 있었다. 평소에 나의 말을 흘려듣던 남편이 이젠 내 말을 주의깊게 듣는다. 그리고 내 주변을 조심스럽게 서성인다. 내가 노트북을 열고 있으면 슬쩍 뒤로 와서 엿보고 일찍 퇴근해 와서 내 옆에 앉는 버릇을 들인다. 누가 나이든 남편들은 불쌍하다고 하더니 이젠 내 남편이 불쌍해진다. 나무와 바위와 구름만이 아니라 물까지 좋아하는 나는 아직도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배우는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