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킷 리스트를 만든것은 한 2주쯤 되었다. 별다른 의미로 작성한 것은 아니고 평소에 가지고 있던 희망사항을 구체화한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명단을 적어보니 죽기 전에 가보고 싶은 곳이나 해보고 싶은 일들이 많아서 서둘러 실천하고 싶은 충동이 인다.

남편과 나는 이민 1세이다. 미국생활에 적응한 시기는 달라도 두 사람 다 군대생활을 했던터라 낯선 곳 다니는 것을 좋아한다. 젊었을 적에 어떤 식당의 해산물이 먹고 싶어서 가는데 8시간, 왕복 16시간이 걸려도 남편은 기꺼이 운전했다. 우리는 집안을 꾸미는것 보다는 여행길에 돈 쓰는 것을 우선했던 부부였다. 그러나 세월과 함께 우리도 변했다.

나의 버킷 리스트의 첫번째 사항은 ‘미국 50 주 보기’로 내가 사는 나라 미국을 잘 알고 싶은 것이다. 며칠 전에 인터넷에서 미국 50주 지도를 두장 프린트했다. 그리고 남편에게 한장 주고 내가 한장 가졌다. 일단 그 주의 어느 곳이든 방문해서 잠을 자고, 그 지역 음식을 먹고 또한 며칠을 보내었다면, 그것은 비록 장님이 코끼리 만지기 식이지만 그래도 그 주를 알게 되었으니 그런 주를 크레용으로 색칠을 하자고 했다.

그런데 결과는 남편의 지도에는 31주가 색칠해졌고 나의 지도에는 단지 26주가 색칠되었다. 그만큼 아직 가보지 못한 주가 많았다. 우리가 방문하지 않은 주들은 주로 중부 켄사스 주 위쪽과 서북부, 그리고 동북부 지역이었다. 그런 주들을 찾아갈 자동차 여행을 생각하는데 남편이 말렸다. 운전하지 말고 비행기 타고가서 차를 렌트하자고 했다. 하기는 매인이나 뉴햄프셔 주를 보기위해서 앨라바마에서 동북부 끝 지역으로 운전해서 가는것 보다는 그 안건이 좋다. 하지만 나의 의도는 서둘지 않고 느긋하게 쉬엄쉬엄 샛길로 빠져서 구경하며 길 여행의 묘미를 즐기자는 것이다.

그리고 가까운 곳인 사우스 케롤라이나 주는 우리가 운전해서 여러번 지나갔지만 멈추어서 제대로 구경을 하지 않은 주였다. 그래서 일단 일주일 정도 그곳으로 가서 대서양을 끼고 다니며 개척시절의 흔적을 찾아보고 싶었다. 반대하면 내가 혼자 집을 떠날터라 남편은 기꺼이 함께 간다고 고맙게도 나서 주었다.         

‘미국 50주 보기’를 실천할 계획을 세우는 나를 보더니 남편도 비슷한 생각을 하며 버킷 리스트를 만드는 눈치였다. 전에는 훗날 자신이 퇴직하면 매일 골프만 치겠다더니 이제는 낚시나 사냥 등 다른 취미에 관심을 가진다. 그리고 싫다는 나를 이끌고 주말에 찾아간 곳은 컨벤션 센터에서 열리던 제 19회 벅마스터스 엑스포 (Buckmasters Expo)였다. 다운타운에서 많은 행사들이 일어나지만 이 엑스포처럼 사람을 끄는 대대적인 행사는 없다. 우리는 자동차 세울 곳을 찾아서 한참을 헤매었다.

남부사람들의 가장 큰 취미생활은 사냥이다. 숲의 색깔로 위장한 의복이나 차량 등 사냥에 필요한 총과 활에 첨단적인 보조기구들, 그리고 야외에서 필요한 모든 장비나 부품들이 완벽하게 모여서 전시, 판매되고 있었다. 앨라바마의 사냥터에 대한 광고나 일년내 사냥하도록 렌트할 수 있는 남부 들판과 숲에 대한 안내도 많았다. 남녀노소 막론하고 엄청나게 찾아온 사람들로 북적이는 전시장을 돌면서 나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였다.

300이 넘는 부스를 기웃이며 질문을 하던 남편은 많은 숫자의 박제된 동물들의 생명 잃은 눈빛에 질렸는지 일순간에 사슴을 사살할 수 있다는 총알같이 생긴 날카로운 화살의 끝머리를 만지다가 얼른 내려 놓았다. 그 순간 사냥에 호기심을 가졌던 그가 아름다운 생명을 살생하는 취미를 배우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와이오밍 주나 아프리카로도 사냥을 다닌다던 두 사냥꾼이 자랑스럽게 보여준 사진에서 우리는 불운했던 야생동물들의 죽음만 보았다.

혼잡한 전시장을 빠져나오면서 “박제된 사슴들이 불쌍해” 라던 남편이 다음에는 낚시에 관한 것을 알아보겠다고 했다. 나는 키득이며 나오는 웃음을 멈출수가 없었다. 차라리 나처럼 ‘미국 50주 보기’나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을 많이 찾아보는 것을 버킷 리스트에 담으라고 남편에게 권고했다. 나이가 들수록 채우고 싶은 욕구는 삶과 자연에 대한 감사함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