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한 주택가 뒷길을 운전하는데 속도가 높다고 불평하는 남편의 목소리에 불현듯 오래 전에 본 한 영화가 생각났다. 그 영화에서 중년의 흑인인 호크 (Hoke)는 나이 지긋한 백인 노부인 데이지 (Daisy) 를 운전해서 다닌다. 뒷자리에 앉아서 속도가 높다고 불평하는 미스 데이지의 칼날같은 음성이 옆에 앉은 남편의 목소리로 바뀌었다. 사람좋은 호크는 부드럽게 대응하며 속도를 내고 있지 않다고 미스 데이지를 설득했지만 내 입에서는 “미스터 데이지를 운전해서 다니는 것이 왜 이렇게 힘드냐”는 불평이 나왔다. 이어서 “왼쪽으로 돌아” 라 소리친 남편은 영락없는 ‘미스터 데이지’였다.    

1989년 아카데미상 최우수 작품상을 받은 영화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 (Driving Miss Daisy)’는 인종과 노인등 사회 문제를 다룬 작품이다. 주인공들인 독립심이 강하고 완고한 70대의 유대계 노부인역의 제시카 탠디와 친절하고 유머가 가득한 중년의 흑인 운전사역 모건 프리만이 뛰어난 연기를 했다. 영화의 배경은 인종차별이 심했던 남부 애틀란타이다. 흑인 운전사가 1948년부터 백인 노부인을 운전하고 다니면서 그녀로부터 냉대를 받아도 진심으로 그녀를 돌보아 주는 스토리이다. 호크는 미스 데이지의 고집과 무시를 인내로 받아주면서 동시에 존경심을 잃지 않고 유머스럽게 대처한다. 그리고 미스 데이지는 호크를 통해서 집안일이나 친구들, 유대 교회에 몰두하던 생활에서 민권운동인 사회 이슈에 관심을 갖게 된다. 두 사람의 교류에는 그 당시의 사회상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고 시간이 지나면서 키운 피부와 사회적 관념을 뛰어넘은 놀라운 우정이 있다.

변하는 세월과 함께 서로 존중하며 의지하는 영화속 두 사람의 사연과 달리 나와 남편은 세월이 지날수록 서로의 혈압을 올리고 있다. 나이 들면서 잔소리가 많아진 남편은 특히 내가 운전할 적에는 더욱 심하게 군다. 처음에는 불안해서 그러나보다 했는데 어쩌면 버릇이 된것 같다. 복잡한 차량들 사이에서 방어식 운전을 하면 노인처럼 운전한다고 짜증을 내고 속도제한에 따라 운전해도 속도가 높다고 늘 트집하니 나의 인내심은 위험수위에 닿는다. 그래서 남편이 옆자리에 앉으면 짧은 거리를 운전해도 쉽게 피곤해져 버린다.

반대로 나도 남편에게 잔소리를 한다. 남편은 차를 타면 AM 톡 라디오를 주로 듣는다. 우리 사회의 부정적인 요소만 골라서 감정을 격앙시키는 톡 라디오 호스트의 신경을 거슬리는 편견을 듣다보면 현 정부는 하나도 제대로 잘 하는 것이 없고 세상도 말세다. 미국이 방향감각을 잃고 어두운 터널에 갇힌 기분에 몰리면서 머리가 지근거리며 아프다. 내가 두통을 호소하면 남편은 묵살하고 볼륨을 높인다. 우리 부부는 늙어가면서 서로에 대한 배려보다 짓궂은 장난꾼처럼 티격태격한다.      

하지만 장거리 여행할 적에는 운전하는 사람이 스테레오의 주도권을 가지는 것으로 휴전협정을 맺었다. 내가 운전하면 NPR을 듣거나 책이 녹음된 CD를 듣고 남편이 운전할 적에는 게임 중계나 간혹 톡 라디오를 듣는다. 도서관에서 빌린 스파이 스토리의 CD는 긴 여행을 지루하지 않게 도와주고 또한 남편이 운전해도 계속 흥미진진한 사건의 전개를 듣게 되어서 좋다. 요즈음은 간편하게 MP3 CD 하나면 10시간 이상을 즐긴다.

나의 운전을 불평하는 ‘미스터 데이지’ 덕분에 오늘은 집에서 좋은 영화를 다시 보았다. 예전에 느끼지 못했던 섬세한 아름다움이 많았다. 호크와 미스 데이지의 관계가 발전해서 소소한 대화와 눈짓 하나에도 서로에 대한 신의가 담겨 있었다. 앨라바마 모빌에 사는 미스 데이지 오빠의 90세 생일에 참석하려고 가던 두 사람이 두 앨라바마 경찰관과 맞닥뜨린 에피소드가 있었다. 평화롭고 흥분되었던 여행기분을 남부의 고질인 인종차별주의자들이 파괴시킨 것은 실로 유감이었다. 그리고 폭설로 단절된 집에서 두려움에 떨던 미스 데이지가 찾아온 호크에게서 위안을 받고 “You are my best friend.”라 천명한 장면에서는 가슴이 짠했다. 25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두 사람이 나눈 서정적인 생활은 인간미로 가득했다. 추수감사절에 치매증으로 양노원으로 옮긴 미스 데이지를 방문한 호크가 97세인 미스 데이지에게 펌킨 파이를 떠먹이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완벽한 서사시였다.        

하지만 현실의 내 생활에는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같은 연연함이 약하다. 살며 사랑하며, 각별히 서로 돌보며 살아야겠다고 다짐하지만 핸들을 잡고 ‘드라이빙 미스터 데이지’를 하게되면 그 각오는 사라진다. 아직도 젊은양 착각하며 사는 우리는 자동차안에서 곧잘 불협화음를 일으킨다. 그리고 이렇게 실랑이질을 계속하는 재미를 잃을까 겁이나서 두 사람 다 열심히 혈압약을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