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해서 몬터레이에 사는 시동생네도 보고 시부모님의 산소도 들렀다. 그리고 오레곤주로 여행 가는 길에 새크라멘토를 지나게 되었다. 그곳 대학병원에서 일하는 의사인 조카를 보려고 하니 이계숙씨 생각이 났다. 조카와 그녀에게 연락을 했더니 모두 찾아오라며 환영했다.

소탈하고 재미있는 글을 쓰는 이계숙씨를 알게된 지도 벌써 6년이다. 사실 2006년에 내가 이곳 미씨사이트에 컬럼을 열게된 것도 바로 그녀를 통해서였다. 그동안 글을 읽으면서 많이 친숙해진 사람이라 만나 보고 싶었다. 새크라멘토 대학병원에 도착해서 반가운 조카를 만난 후에 남편과 주 정부청사를 관광했다. 켈리포니아 각 카운티를 소개한 전광판을 보며 천천히 걷는 남편을 독촉했더니 모르는 사람을 찾아간다며 머뭇거렸다. 하지만 남편을 밀어서 약속시간에 맞추어 그녀의 집을 찾았다.   

집앞에서 기다리던 그녀의 모습은 사진에서 보던 여자보다 훨씬 정겨웠다. 낯익은 그녀의 개도 꼬리를 흔들며 반겼다. 활달한 성격의 그녀는 우리 두사람을 오랜 친구로 반기며 집안으로 안내했다. 사실 버리기를 잘하는 그녀의 집안이 궁금했었다. 책들과 살림살이로 어수선한 우리집의 환경과 전혀 다른, 먼지 한 점 멈추기 민망할 정도의 산뜻함이 그녀의 집안 분위기여서 많이 놀랐다.

흐트름이 전혀 없는 밝고 잘 정돈된 집안을 남편과 감탄하며 돌아본 후에 우리는 식탁에 앉았다. 벌써 정갈한 저녁이 준비되어 있었다. 이계숙씨의 전문음식, 월남국수. 언젠가 그녀가 월남국수 만드는 비법을 글로 올렸을 적에 침을 흘린 적이 있었던터라 시원 매콤한 국물을 맛보며 맛있게 먹었다. 정성을 들여 끓인 국물에 맛있는 해물과 쌀국수가 입안에서 빠르게 사라졌다. 이계숙표 월남국수는 그녀의 광고대로 화확 조미료 없이도 담백하고 깊은 맛이 있는 건강식이었다.

주말 광부라는 계숙씨 남편은 그가 수확한 금덩이들을 보여 주었다. 월남국수를 맛있게 먹은 후에 번쩍이는 금덩이를 만지작이며 과일과 치즈를 곁드린 와인잔을 기울이던 남편은 행복했고 계숙씨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던 나도 행복했다. 더우기 계숙씨 글을 통해서 알게된 J씨 (J 회장님)가 찾아와서 잠시나마 계숙씨의 일상을 맛보는 즐거움을 가졌다. 밤늦게 숙소로 돌아가던 길은 어두웠지만 낯설지 않았다.

사람의 인연이 신비스러웠다. 우연히 글을 통해서 만났지만, 그 연결이 세월의 흐름과 함께 단단한 인연의 고리를 만들었다. 나와 취향과 분위기가 전혀 다른 계숙씨와 이렇게 마음 편하게 사귈수 있음은 바로 우리가 쓴 글 덕분이었다. 나는 감동을 주는 그녀의 글을 통해서 그녀를 좋아하고 있었고 그녀도 나의 글을 통해서 벌써 나를 꽤뚫고 있어서 서로의 소개도 필요 없었고 편안했다.

이번 나의 방문이 그녀에게 호기심이 되었으면 좋겠다. 여행을 좋아하는 나와 달리 집 떠나기를 주춤이는 그녀가 남부로 불쑥 나를 찾아오는 상상을 하니 벌써 슬슬 즐거워진다. 땅에서 올라오는 하얀 순결인 목화밭과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의 전설을 그녀에게 보여주고 싶다. 척박하다고 알려진 남부 환경에도 따스한 사람살이와 천연 자연의 아름다움이 있음을 보여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