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레곤 주를 관광하고 101번 도로로 켈리포니아로 내려와서
레드우드 주립 공원에 들어섰다. 오레곤 산등성이의 화사하던 단풍이 켈리포니아에서는 짙은 푸름으로 변했다.
꼬불한 산자락을 돌면서 자동차의 창문을 내렸다. 습한 옅은 안개는 가까이 있는 태평양에서
건너온듯 소금기가 있었다. 아메리카 삼나무인 거대한 레드우드들이 하늘을 가렸고 고사리와 이끼들이 발디딜 틈도
없이 거목들 주변을 온통 뒤덮은 숲길이 이어졌다. 구석기 시대를 연상시키는 거목들의 행렬에 완전히 압도 당했다.
세상에서 가장 큰 거목이라는 태평양 근처의 레드우드 이야기는 전설처럼 들었지만 이렇게 막상
마주하니 전신이 움츠려 들었다. 나무의 나이라는 수 천 년의 세월을 가늠하기가 벅차서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구절을 중얼거렸다. 오래 전에 아무도 가지 않은 산이 있었다. 개척시절, 누군가 이 산속에 들어 와서 발자국을 남겼다. 그리고 그 발자국은 후세 사람들에게 길이 되었다. 세상으로 열린 길은 환경을 변화시켰다.
대자연의 축축한 신비에 끌려서 차를 세우고 숲에 들어섰다. 울창한 삼림속에서는 새들도 기가 죽었는지 정적을 깨뜨리지 않았다. 고개를 젖히고 하늘을 향해서
나무의 둥치들을 따르니 목이 아팠다. 그러나 고층건물 아래에서 올려다 보는 것보다 더 벅찬 감동을 받았다.
죽은 콘크리트와 달리 풋풋하게 살아서 하늘로 꼿꼿하게 치솟아 있는 나무들의 싱싱한 생명의 탄성이 우주에 꽉 차 있었다.
태곳적의 수목으로 평온한 기류는 방문자를 간섭하지 않았다. 태고의 정적이 건네준 것은 오히려 성찰이었다. 경건한 마음으로 젖은 나무 둥치를 조심스럽게
만지며 나 자신과 마주섰다.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가진 미약함으로 인간의 존엄을 지키려는 감각마져 흐릿했다.
수 천 년을 지켜온 숲속에 발자국도 남길수 없음이 서운했다.
갑자기 남편의 셀폰이 울렸다. 멀리 몽고메리에 사는
지인의 목소리가 크게 울려서 마비되어 있던 나의 의식을 깨웠다. 산속에서 현대의 기구인 전화기가 잘 연결되는
것이 신통했지만 오히려 민망스러웠다. 다시 산길을 돌고 숲길을 빠져나와 초원을 지나며 한 무리의 엘크들을
만났다. 사람이 옆에 차를 세우고 다가가도 전혀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무심한 초원의 일부인 그들의 거대한 덩치를 카메라에 담았다.
구비구비 산길을 벗어나 해안에 도착했다. 긴장했던 마음이 햇살아래 평화로운 항구의 정경에 푸근해졌다. 식당을 찾아 차를 세우니 요란한
소음이 진동을 했다. 주차장에 차들만 몇 대 있었지 사람은 없어서 좌우를 둘러보며 소음의 근원지를 찾았다.
식당입구 옆에 작은 피어가 있었는데 그 위에 sea lion들이 온통 올라서 있었다.
더러는 오수를 즐기고 더러는 하늘을 향해 거친 목소리를 쏟아내며 꽤 소란을 피웠다. 그곳의 명물인 해산물을 먹으면서 눈은 식당의 커다란 유리창 밖 항구에 머물었다. 색깔 산뜻한
어선들을 배경으로 얼핏 헤아리니 60이 훨씬 넘는 숫자의 sea lion들이 피어에서 꼬물거렸다. 몇 놈은 앞지느러미로 열심히 배를 긁어대고 있었고 몇 놈은 바닷물에
첨벙 들어갔다 나오기를 계속했다. 그 모든 정경이 너무나 당연스러웠다.
101번 도로로 해안을 따라 내려가다가 이번에는 유명한 '거목들의 거리, Avenue of the Giants' 에 들어섰다. 31마일의 거리는 놀람과 경이의 연속이었다. 숲길을 따르며 영원히 죽지 않는 나무라는 웅장한 레드우드
앞에서 두 팔을 양쪽으로 끝없이 늘려 본것은 나의 오기였다. 수령이 3천년이었다는 고목아래 터널로 천천히 운전하던 남편의 옆에 앉아서 손에 땀을 쥐고 있었다. 장관이었던
'거목들의 거리'를 벗어나 다시 꼬불꼬불한 산길을 지나 해안의1번 도로로 가니 짙은 안개가 어둠과 함께 우리를 숨겼다.
다음날 바닷가 강파른 해안을 낀 1번 도로로 안개와
숨바꼭질하며 샌프란시스코로 내려간 하루는 긴장과 감탄의 연속이었다. 절벽의 끝자락 가까이서 운전하던 남편에게 '천천히' 를 주문처럼
읊으며 안개낀 바다에 현혹되었다. 이번에 일주일 동안 1800마일을 운전해서 켈리포니아
북부 산악지대와 오레곤을 다니며 천연의 아름다움을 찾아 보았다. 여러 곳에서 만난 좋은 사람들,
수 천년을 살고 있는 거목들, 파도에 꿈쩍않던 거친 해안 지역까지 나를 겸허하게
해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