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리다의 샌데스틴 해변에서 하루를 열어주는 일출을
보았다. 그 감동적인 장관이 하루종일 나와 함께 있었다. 사실 이곳은 우리가 즐겨 다니는 앨라바마의 바다보다 물빛이 곱다고 남편이 좋아하는 곳이다. 그래서 남편의 생일이 끼인 주말을 이곳에서 보내고 있었다. 오전에는 눈부신 하얀 모래사장을
밟으며 에머랄드색 물빛에 도취했고 오후에는 가까이 있는 예술가들이 모여 사는 잘 가꾸어진 휴양도시와 근처 해안지역의 열대성 환경에 매료되었다.
크리스마스 트리들과 장식이 곳곳의 거리를 단장했고 지역 라디오에서는 캐롤을 들려주었다. 추수감사절을 지나지 않았지만 이곳에는 벌써 크리스마스가 성큼 다가와 있었다.
원래 밤 늦게까지 깨어있다가 아침이면 힘들게 일어나는
버릇이 있던터라 해돋이를 다시 보려고 밤에 잠자리에 들면서 ‘일출봉에 해 뜨거든 날
불러주오…’ 를 흥얼거렸다. 누군가가 나의 코믹힌 소망을 들었는지 다음날
새벽에 나는 일찍 눈을 떴다. 남편을 깨우지 않으려고 어둠속에서 옷을 주섬주섬 두껍게 입고 발코니의 문을
열고 나섰다. 어두운 바다와 마주서니 싸늘한 공기가 나의 졸음을 완전히 깨웠고 파도소리가 철썩이며 가까이
다가왔다. 파도의 리듬에 나를 맡기고 상큼한 공기를 심호흡했다. 눈
앞의 세상은 온통 신비로 가득했다.
그리고 어둠속에서 고양이 걸음으로 다가오는 새벽을
기다렸다. 기다림의 시간이 이어지면서 내 속에서 어지럽던 세상살이 근심들이
하나씩 빠져나가서 파도를 탔다. 파도에 소근소근 나의 비밀스런 걱정들을 털어 놓으니 별로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어둠이 조금씩 흩어지자 파도 타던 나의 걱정들도 거품되어 흩어졌다. 그러자 평온이 나를 에워샀다. ‘월출봉에 달 뜨거든 날 불러주오. 기다려도 기다려도 님 오지 않고 빨래소리 물레소리에 눈물 흘렸네.’ 발코니의 의자에 웅크리고
앉아서 동쪽을 주시하고 조용한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오래 전에 제주도 바닷가에서 일출을 보고 난 후에
즐겨 들었던 가곡 ‘기다리는 마음’이 바닷가에 앉아 해뜨기를 기다리는
나의 마음을 가다듬어 주었다.
‘봉덕사에 종 울리면 날 불러주오.
저 바다에 바람불면 날 불러주오 기다려도 기다려도 님 오지 않고 파도소리에 물새소리에 눈물 흘렸네.’ 좀 엉뚱하다 싶지만 웬지 이 노래가 나를 편안하게 감싸 주어서 아마 열번은 더 불렀다. 불그스름한
수평선 저 멀리 한곳에서 살포시 빛이 올라와서 낮으막하게 깔린 구름에 닿았다. 빛과 그림자.
드디어 대 전주곡이 시작되었다. 빛은 강세를 보태면서 물위의 하늘을 온통 붉게 태워나갔다.
위대한 자연이 그리는 강렬한 유화가 하늘을 덮었다.
언제 어떤 지역에서나 바다에서 해가 떠오르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흥분을 주는 벅찬 체험이다. 나는 일출을 목격하는
순간에 숨을 죽이고 최면술에 걸려든다. 시선은 한곳에 고정되고 전신은 마비되어서 조금씩 모습을 들어내는 해에
빨려 들어간다. 들러리들을 먼저 내
보내고 따라 나서는 수줍은 신부같은 해는 살그머니 세상에 나서면서 조금씩 베일을 벗는다. 그러다 둥근 모습으로
물 위로 올라서면 당당한 신랑으로 변해서 훌쩍 하늘 높이로 올라간다. 그 장엄한 위용에 위축당한 어둠의 잔재는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고 세상은 모습을 들어낸다. 그때 하늘과 바다는 선명히 나누어지고 나도 최면상태에서 깨어난다.
산뜻한 푸른 하늘의 도화지에 남부 목화밭의 하얀 솜이
흩어져서 그린 부드러운 구름의 환상을 좇다가 어둠을 떨쳐낸 옥색 맑은 물이 찬란하게 반짝이는 물살을 따랐다. 그 위로 새벽을 반긴 갈매기와 헤론이 날렵하게 나는 모습이 싱그러웠다.
햇볕에 눈이 부셔서 방안으로 들어가 선글라스를 찾고 커피를 끓였다. 이번에는 따스한
커피잔을 들고 다시 밖으로 나섰다. 호텔의 고층 발코니에 서서 천천히 커피를 마시며 환하게 펼쳐진 아름다운
세상을 오랫동안 지켜 보았다. 어느 사이에 새벽을 찾아 나선 사람들과 개들이 갈매기들 사이에 섞였다.
어둠과 빛의 바꿈은 바로 근심에서 희망으로의 비약이었다. 자연의 연출이 매일 인간에게 일깨워주는 레슨을 배우면서 새로운 각오와
희망을 한꺼번에 가슴에 안았다. 범사에 감사하고 자연의 섭리에 따르며 살아갈 각오를 다진것은 이번에도 내가
해와 나눈 약속이었다. ‘일출봉에 해 뜨거든 날 불러주오’ 를 다시
부르니 감사하게도 ‘구하라 그러면 얻을 것이다’ 라는 성경구절이 떠올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