쌓인 눈이 뚝 떨어진 기온따라 꽁꽁 얼어 붙었다. 새벽에 호텔의 두꺼운 커텐을 열면서 눈이 온다고 좋아했던 기쁨은 잠시였다. 눈은 바로 멈추고 환한 햇살이 땅을 덮은 눈을 반사하며 세상을 더욱 밝게 비추었다. 눈이 오는 날이나 쨍하고 추운 날 모두가 북부의 겨울을 톡톡히 맛보여 준다. 공공 장소와 대로는 눈이 치워져 있지만 눈덮인 뒷길은 빙판이라 두려워 아주 천천히 운전해 다닌다. 온화한 날씨의 남부에서 미국에서 가장 춥다는 지역인 미네소타에 온 지 벌써 6일이 지나니 추운 날씨에 조금 익숙해진것 같다. 

 

밤 11시쯤 되어서 온 가족이 교회를 가려고 나서니 남편이 마이너스 기온이라 옷을 단단히 입으라고 주의를 주었다. 4년 전, 처음 미네소타에 왔을 적에 사돈네를 따라 그들이 섬기는 루터란 교회에 가서 크리스마스 이브의 예배를 보았다. 그곳은 제단 바로 뒤의 거대한 벽에는 온통 파이프 오르간이 꽉 채워져있고 넓은 성전은 심플하고 기능적인 스칸디나비안식 디자인으로 밝은 분위기를 가진 현대식 건물의 교회였다. 특히 크리스마스 이브의 자정에는 100여명이 넘는 합창단과 오케스트라가 함께 거룩하고 성스러운 화음을 모아서 음악예배를 드렸다. 그당시 예배를 보며 받았던 은혜는 오랫동안 좋은 추억이었다.

 

언젠가 NPR에서 미네아폴리스와 샌폴 트윈시티의 동북 방향에 있는  바로 그 루터란 교회 합창단과 오케스트라의 음악을 소개해 주었을 적에 새삼스럽게 크리스마스 이브에 받았던 추억이 떠올라서 즐거웠다. 그래서 이번에 우리 가족은 다시 그 교회를 찾아갔다. 입구에서 하얀 초를 하나씩 받아들고 앞자리로 가서 합창단과 오케스트라단을 마주보고 앉았다. 붉은 포인세티아 꽃 정원이 제단 곳곳에 강렬했고 성전안은 축제의 분위기로 술렁였다. 딸들과 사위들과 촛불을 들고 음악예배에 참여하니 가슴이 뭉클했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아기 예수 탄생의 축복을 나누는 순간은 더없이 큰 기쁨이었다.

 

크리스마스 선물에 대한 설교를 들으니 받았던 크리스마스 선물들이 떠올랐다. 그동안 살면서 주고받은 물질적인 선물은 잊었지만 마음으로 받은 많은 선물들이 까마득한 기억의 창고에서 석류알처럼 알알이 영글어 있었다. 모두가 소중하고 고귀한, 오늘의 나를 키워준 양식이었다. 하나씩 아름다운 선물이 사랑으로 변하여 포인세티아 꽃잎에 살포시 앉았다. 꽃잎들이 훌쩍 커서 그 선물을 준 사람들의 그리운 얼굴로 변해서 성전에 섰다. 정성과 진심이 담긴 정을 나눈 사람들과의 교제가 이웃으로 사회로 나라로 그리고 세계로 연결되고 있었다. 한 개인의 평화가 세상의 평화에 기여하는 이유였다.

 

피아노 반주를 곁들인 바이얼린 독주는 음악회에 참석한 착각을 주었다. 하지만 촛불로 세상을 밝히며 ‘고요한 밤 거룩한 밤’ 노래를 부르니 신성한 기운이 사람의 마음에 스며들었다. 그리고 2012년에 일어났던 일들이 눈 앞에서 서서히 지나갔다. 기쁘고 슬펐던 일들이 삶의 테를 단단하게 다져주었다. 누군가가 생노병사의 과정을 지혜롭게 살아가도록 사람들을 인도해준다는 확신이 생겼다.

 

지휘자를 따라 Joy to the World를 부르는 합창단원들의 열정적인 목소리가 하늘과 사람을 움직였다. 그들의 밝고 기쁨에 찬 표정들은 천상의 천사들 같았다. 그들과 더불어 앞자리에 앉은 우리 가족도 기쁜 마음으로 크게 노래를 부르고 교회를 나섰다. 싸늘한 어둠이 두텁게 세상을 덮었지만 멀리서 찾아오는 새벽의 신선한 기운을 느꼈다. 주차장에 얼어붙은 눈들은 발로 툭 차니 꿈틀거렸고 냉랭한 공기도 푸근하게 대지를 맴돌았다. 우주는 살아 있었다.

 

두터운 옷을 겹겹이 입고 모자와 스카프까지 잔뜩 둘러서 걷는 것이 조금 불편했지만 추위를 잊고 하얀 눈과, 겨울밤 정경을 맘껏 즐겼다. 크리스마스 날을 맞이하며 세상의 평화를 구하는 소망을 간절히 빌었더니 영혼이 맑아졌다. 그리고 마른 가지에 걸린 달이 태양처럼 밝게 땅위를 비추며 크리스마스의 기적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일어나고 있음을 일러 주는듯 따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