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틀란타 공항 가까운 호텔의 로비에서 남편을 기다리고 있었다. 전자책을 읽느라 한참 몰두하고 있는데 옆의 소파에 앉았던 남자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뭐라고? 날 더러 식스 피트 언더 (Six Feet Under)로 오라고?” 그리고 이어서 “난 아직 그곳에 갈 마음이 전혀 없어.” 라며 쌩 찬바람을 내었다. 그리고 잠시후 그가 셀폰을 귀에대고 배를 잡고 큰 소리로 웃었다. 눈은 전자책에 두고 온 신경을 그의 대화에 집중했다. ‘식스 피트 언더’, 보통 무덤을 말하는 이 말이 애틀란타에 있는 어떤 식당의 이름이었다.

 

그곳에서 어떤 음식을 파느냐고 묻던 남자는 내키지 않지만 택시를 타고 식당으로 가겠다며 떠났다. 남부인들의 독특한 유머일까. 어떤 말짱한 정신을 가진 사람이 식당을 열면서 ‘식스 피트 언더’ 라고 이름을 지었는지 궁금했다. 어쩌면 공동묘지 근처에 있는 식당인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누군가 날더러 그런 이름을 가진 식당에서 만나자고 한다면…글쎄 어떤 기분이 들까.

 

남편이 도착해서 어디서 점심을 먹고 싶으냐고 물었다. “식스 피트 언더에서” 라고 했더니 “미쳤니?” 라며 화를 내었다. 동양인과 서양인들의 감각차이가 재미있어 웃음이 나왔다. 우리는 죽어도 동양인이다. 죽을 ‘사’ 자를 싫어해서 심지어 엘리베이트가 3층에서 5층으로 건너뛴 것을 당연히 여기는 사람들이다. 죽음을 두려워하고 무덤을 싫어한다. 여러 지역에서 공동묘지를 관광지로 삼고 공동묘지 바로 옆에 집을 짓고 사는 사람들도 있지만 우린 아니다.

 

그러나 조지아주의 사바나에 가면 꼭 들려야 하는 곳이 있다. 역사적인 다운타운 관광과 함께 바로 공동묘지를 둘러 봐야한다. 1700년대 형성된 Colonial Park Cemetery나 ‘Midnight in the Garden of Good and Evil’ 소설로 유명한 Bonaventure Cemetery는 그 자체가 미국의 역사를 담고 있다. 스페니쉬 모스가 깊게 그늘을 지우고 있는 묘지에서 수령이 수백년 된 떡갈나무들이 식스 피트 언더에 안식하고 있는 옛 사람들의 많은 사연을 천연덕스럽게 보호하고 있다.

 

삶과 죽음을 자연스럽게 연결하며 사는 이곳 사람들은 교회 마당에 공동묘지를 만들면서 죽음을 삶의 부분으로 받아들이지만 나는 아직도 공동묘지는 주택가와 멀찍이 떨어진 외진 곳에 마련하는 것을 당연시 한다. 그리고 무덤이 있었던 자리에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동양사람과 달리 이곳 사람들은 무덤이 있었던 자리에 집을 지으면 복이 온다고 믿는 사람이 있다.

 

얼마 전에 사랑하는 아내가 죽자 그녀의 시신을 앞뜰에 매장하고 매일 무덤을 지키는 남편을 이웃 사람들이 고발한 기사가 있었다. 주거지역의 계약에 대한 위반이라 믿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것을 거부감없이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니 식당이름으로 ‘식스 피트 언더’ 라 해도 찾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색다른 식당이름을 듣고 생각이 잠시 공동묘지로 엉뚱하게 쏠리다가 다시 가게의 이름에 많이 웃었던 기억이 났다. 몇 년 전에 한국을 방문했을 적에 거리를 어지럽게 메웠던 간판들 중에 ‘뚜둘겨 손맛’, ‘저8계 콧9멍’, ‘미소 김밥’, 그리고 ‘먹을래 싸갈래’ 등의 재치있던 식당이름을 보았다. 그 뿐이 아니라 ‘깨끼’ 라던 옷가게나 ‘속편한 내과’, ‘새이치과’, ‘I can 태권도’, ‘디딤신 구두’, ‘큰 사랑 교회, ‘온 사랑 교회’ 나 ‘효자 병원’ 같은 좋은 이름도 있었다.

 

그중 나를 당황시켰던 간판 하나는 ‘Evezary’ 였다. 입안에서 이 단어를 굴려 보며 우선 생각한 것은 ‘Adam과 Eve’의 Eve와 zary에 대한 호기심이었다. 여성 품목을 파는줄 았았는데 가까이 가서 보니 ‘이불집’ 이었다. 구태어 이부자리를 발음되는 영어로 사용한 것에 갸웃했었다. 모국의 거리에서 순수 한국말 상호보다는 더 많이 사용되는 외래어 발음의 간판에 놀랐지만 다니며 읽는 재미는 톡톡히 있었다.

 

아무튼 식당 이름이 특이하면 기억하기 쉽다. 음식이 맛있고 또한 서비스가 좋으면 더욱 강한 인상으로 남는다. 하지만 ‘식스 피트 언더’ 같은 식당이름은 음식 맛이나 서비스를 건너 뛰어서 쉽게 잊지 못하니 그 식당 주인은 해학적이고 비지니스 마인드가 대단히 특출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