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회의중 갑자기 한 여자가 손을 들었다.  자기는 알츠하이머병을 가졌기 때문에 생각났을때 얘기 해야 된다하자 10명의 참석자들 입을 꽉 닫았다.  안건의 역사적 배경을 설명하는 그녀를 보면서 머리나 가슴이 혼란스러워 정작 그녀의 설명은 흘려 들었다.

치매로 10년을 고생한 시어머니 회상과 함께 가끔씩 흐릿해진 기억의 줄기를 잡아 당기는 새로운 버릇이 생각났다.  그리고 그녀가 연말에 일찍 정년한다는 소문을 미리 들은터라 착잡했다.   

회의 끝난후 그녀의 팔을 잡았다.  눈을 맞추고 정말 치매라고 진단 나왔느냐고 물었다.  친정엄마가 치매환자라 퇴직하고 친정엄마를 돌볼 계획이라고 했다.  그녀도 검사를 받았는데, 의사가 너무 많은 것을 기억하려고 애쓰지 말라는 충고를 주었단다.   

10대나 20대에 전혀 꿈도 꾸지 않았던 현실.  나이들면서 마주하는 삶의 얼굴들이다.  얼굴의 주름이나 물렁해진 몸의 근육만이 아닌, 내부 기관들의 삐걱임도 야릇한데 두뇌의 기능까지 제 능력을 상실하는 상황은 끔찍해서 생각하기도 무섭다.

지난 금요일 저녁, ASF에서 하는 “Menopause the Musical” 공연을 봤다.  40대 이후의 여자가 거치는 과정.  마음이나 신체, 정신적인 변화를 일일이 지적해서 침체하기 보다는 오히려 축제로 쾌할하게 법석떤 작품이다.  제각기 다른 삶을 사는 4명의 여자들이 나눈 중년기 변화에 공감대가 형성된 관객들 열렬히 박수치며 많이 웃었다.  순리에 적응하는 긍정적인 자세가 좋았다.  그리고 나이 든다고 우는것 보다는 훨씬 편했다. 

다음날, 멤피스 공항에서 연결 비행기를 기다리며 만난 여자들.  존 스타인벡의 책을 읽는 퇴직한 과학선생과 한국책을 읽는 나 사이에 자연스럽게 끼인, 중년인지 노년인지 결혼한지 69년에 남편을 잃었다는 신학교수였던 여자.  우리는 커피잔을 들고 세 사람의 인생을 읽었다.  커피가 식고 각자의 방향으로 떠나는 비행기를 타러 헤어질때까지 중년의 여유와 넉살을 주름살 없이 나누었다. 

나이듬을 인식시키는 일들이 별로 반갑지 않다.  그러나 천연덕스럽게 아무에게나 말을 부치고, 어떤 주제에도 한축 끼는 버릇은 아무래도 나이탓이다.  뉴욕 사는 선배가 근사한 이유는 그녀가 지키는 “늘 힘차게, 당당하고 신나게 매일을 창조하자” 라는 표어다. 

현충일에 미시시피 친정에 가니 나보다 훨씬 어린 막내올케가 갱년기로 땀을 많이 흘리고 있었다.  올케가 나이든다는 사실에 놀랐다.  밀고 밀리고.  빠르게 밀어 부치는 올케의 열기에 밀리면서 절대로 나를 따라 잡지 못한다고 장담했는데 그녀가 어느사이 미시시피강 같은 세월을 건너 뛰고 나와 같은 중년이되어 있었다.   

활동하는 성인으로 나이 먹다가 노년되어 슬그머니 뒤켠으로 비켜서도 당당한 생활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세월을 상대할수 있는 현명한 지혜나 강하게 몸과 마음을 지배할 수 있는 의지는 나이를 삼킨, 마음 먹기에 딸렸음을 중년기는 깨우쳐 준다. 

어쩌면 중년기는 여자에게 자기 발견을 하도록 자유로운 활기를 부어주는 근사한 시기같다.  그러나 젊은 여자분들에게 “Yes ladies, there is life after age 40” 임을 알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