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엄마를 닮아서 천성이 가만히 쉬지 못하는 성격이다.  늘상 무엇인가를 하며 바쁘게 움직이는 버릇인데 이곳 바닷가에만 오면 세상아 나 몰라라 한다.  해마다 8월말쯤 걸프만 바닷가 가서 며칠 보내며 떠나는 여름과 슬슬 작별하고 오는 습관 꼭 지킨다.  습관은 사람살이의 근본이니까.

아침 저녁 바닷가 걷거나 파도 타며 조개 줍고, 부드러운 파도소리 생음악에 취해서 책 읽는 여유는 아무것과 견줄수 없는 행복이다.  파도에 섞여서 은빛 모래사장에 드문드문 노는 사람들의 하나가 되면 세상의 근심은 자동으로 사라진다.  기분좋게도 올해는 두딸이 함께 바닷가서 놀았다.   

플로리다와 주 경계에 있는 앨라바마의 오렌지비치는 200야드가 넘는 길이의 하얀 설탕같은 넓은 백사장과 따뜻하고 깨끗한 물로 유명하다.  2004년에 태풍 아이반으로 큰 피해를 입었지만 이제 그 흔적이 거의 사라졌다.  오히려 해변을 따라 고층의 콘도 건물들이 더욱 요란하게 건축되어서 예전의 좀 빈 공간이 많이 없어졌다. 

어릴때처럼 손을 잡고 파도타며 노는 훌쩍 커버린 딸들을 지켜보며 지나간 세월을 잊는다.  함께 예쁜 조개를 찾고, 누군가가 만든 모래성의 벽을 단단히 굳히고 그옆에 딸들의 이름을 쓴다.  좀 거칠게 닥아온 파도가 눈 한번 안 맞추고 딸들의 이름을 안고 떠나버렸지만 조금도 섭섭하지가 않다.

뜨거운 햇살에 밀려서 풀장에 첨벙이다 야자수 나무아래 긴 의자에 기댄다.  풀장옆에서 키타치며 노래 부르는 가수는 올해는 한 두사람이 쳐주는 박수에도 감사하며 줄기차게 흘러간 노래를 이어간다.  스위트 홈 앨라바마나 밥 딜런의 영원한 젊음을 부를때는 그의 목소리가 두 옥타브쯤 더 올라간다.    

성급함이 전혀 없는 여유와 넓은 자연 공간의 아름다움은 심신을 느긋하게 해준다.  머리위를 나는 갈매기와 펠리컨을 눈으로 쫓다가 미풍에 쓸려서 잠깐 낮잠도 잔다.  저녁마다 지역의 유명하다는 식당을 찾는것은 남편의 의무다.  우리는 재잘대며 맛있게 먹으며 다이어트에 대한 걱정은 아예 안한다. 

다른 여행과 달리, 내일의 일정에 대해 전혀 걱정않는다.  작열하는 뜨거운 태양과 끊임없이 몸으로 부딪혀오는 파도에 따르기만 하면된다.  이렇게 며칠 태양열에 충전하고 돌아 오면 닥아오는 서늘한 계절을 반갑게 맞을 수가 있다.

내년 이맘때쯤은 큰딸옆에 키가 큰 남의집 귀한 아들이 그림자처럼 따라 올테니 올 여름 딸들과 함께 보낸 바닷가에서의 휴일은 우리 가족만의 아름다운 추억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