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 엄마가 사시는 바닷가 마을에 아름다운 사랑의 도서관이 있다.  친정엄마와 같은 교회에 다니시는 분인데 내가 책 읽기를 좋아한다는것을 아시고 예전에 이곳에 잠깐 들리면 그분이 책을 잔뜩 가져와 빌려 주시곤 했다.  같은 지역에 살지 않는 낯선 여자에게 선뜻 소중한 책들을 빌려주셔서 처음에는 내가 오히려 어리둥절했었다.    

예전에 몽고메리에서 한국책들 구하기 힘들때여서 빌려온 책들 신기하게 한참을 굴리면서 읽곤했다.  낯선 작가들과 낯선 내용들에 어떤 책들은 몇달씩 뒤켠에 밀리기도 했다.  그리고 반년쯤 지나 다시 미시시피 찿을때 돌려 드리곤 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책 아끼는 버릇을 아는지라 많은 책들을 빌려 주시는 것이 여간 고마웠고 또 계절이 훌쩍 넘어서 돌려 주게 되어서 여간 미안한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번 방문에서는 책을 빌리려고 전화로 주소를 물어서 그분의 집을 직접 찾아갔다.

조용한 남부 주택가의 안쪽에 지은지 몇년 되지 않은 그분의 집을 찾았을때 오후의 부드러운 햇살이 집앞의 보라색 꽃들에 넘치고 있었다.  방 하나를 서재로 꾸민 그분의 한국 도서관에는 천권이 넘는 한국어 책들이 얌전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한국 방문할 때마다 책들을 사 갖고 오셨고 요즈음도 줄곳 그곳에 사는 가족들을 통해서 신간을 4-50 권씩 주문해서 받으신다고 했다.  몽고메리 시립도서관의 책들보다 더욱 신간인 셈이다.  이민와서 살면서도 한국 문학을 꾸준히 아끼는 한 여자의 책 사랑이다.  책들에 둘러싸인 햇볕 따사한 창가에 앉아서 페이지 마다에서 만나는 한국인들은 정녕 아름다운 꿈일테라 갑자기 그녀가 막 부러웠다. 

방 세면에 들어선 책꽂이 마다 지난 30년 내가 몰랐던 한국 문학의 정수들이 각자의 화사한 이름들로 줄지어 튀어나왔다.  최근 신간들과 낯선 작가들에 대한 설명을 덧 붙여서 그분은 열심히 나를 다시 한국 문학계의 현주소로 빠르게 안내했다.  그리고 내가 좋아할 책들을 권고해 주셨다.

한쪽편 책장들에는 그래도 내가 기억하는 작가들의 책들이 있었는데, 워낙 많은 책들을 쓴 탓인지 창작력이 고갈된 작가들의 책들이라 요즈음에는 퇴색된 내용들이라 했다.  세월의 흐름은 이렇게 책들에도 나타나니…뾰족하게 군데 군데 튀어 나오는 내 흰 머리카락을 어찌 구박줄수 있으랴. 

젊은 작가들의 야심찬 작품들을 골르다가 아예 책장 한쪽부터 차근차근 모두 읽고 싶은 욕심이 일었다.  근처에 사는 책 읽기를 좋아하는 분들이 신간을 거의 다 빌려 갔다고 하셨지만 나한테는 모든 책들이 신간이라 발행 햇수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우선 작가별로 책들을 선택했다.

두백에 잔뜩 빌려들고 나서면서 이런 기쁨을 안겨주시는 집주인의 책사랑이 진정한 책 사랑임을 느꼈다.  좋은 책, 귀한 한국책들을 혼자서만 즐기고 간직하지 않고 주위 한인들과 나누어 읽는 지혜가 바로 책에서 나온 것이리라. 

한국계 이민자들이 고국과 떨어져 살 수없는 끈적한 생활의 연결이 이렇게 한국책들을 통해서 이어지고 있었다.  연결고리가 되어주는 이런 분들이 있어서 이민생활에서 행복한 시간을 가질수 있으니 진심으로 감사한 일이다.  20명이 넘는 이 사랑의 도서관 애용자들 중의 하나되니 이제 미시시피 자주 들락일 또 하나의 근사한 이유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