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방정부 직장들은 인종차별에 대한 엄격한 규정들이 많아서 아무도 노골적으로 타민족에 대한 차별 안한다.  그런데 남부의 작은 도시 사람들은 아직도 굴곡진 역사의 끄트머리쯤에 살면서 타지에서 온 사람들에 익숙하지 않다.

군대생활 하면서 전혀 못 느꼈던 이질감을 가지고 직장생활을 시작했을때 나한테 눈총을 많이 준 여자가 있다.  나보다 5살 정도 더 나이 먹은 이 지역의 순수 토박이인데, 같은 일을 20년 이상한 터줏대감으로 직장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완전한 소유의식을 가진, 철저한 남부 여자였다.

처음부터 그녀의 눈밖에 들어난 나는 매사에 시어머니 잔소리 받듯이 그녀의 돋보기 안에서 일했다.  아마 20대에 그런 일이 있었으면 질식했겠지만, 군대생활하며 여러 사람들에 부대낀 덕택에 적당히 묵살하고 내 일에만 전념했다.  그리고 동양인에 대한 거부감을 느끼는 것은 세상에 대한 그녀의 좁은 안못 탓이라고만 봤다.  

직설적으로 말하는 내 버릇에 몇 사람의 직장 동료들이 여러번 감정이 상했다는 것도 나중에 알았다.  권투장갑을 끼지 않고도 다툴줄 아는 매끈한 남부의 대화법에 익숙하지 않은 탓에 내가 일으키는 파장을 전혀 모르고 매일 웃으면서 출근한 셈이다. 

세월이 약이라더니, 한 2년정도 지나면서 그녀의 눈길도 부드러워졌고 다른 동료들과 함께 나를 챙겨주기 시작했다.  매일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이 일을 하다보니 미운 얼굴도 정이 들었는지 슬그머니 내 피부색이 섞여 버렸다. 

한참후에, 내가 처음 일했을때 나한테 왜 그렇게 심술궂게 굴었는지를 물은 적이 있다.  그런데 그녀의 대답이 오히려 가관이었다.  내가 첫날부터 굉장히 건방지게 굴었단다.  아마 낯선 사람들과 잘 섞이며 도움을 청하지 않고 혼자서 일 처리를 한것이 외부에 건방지게 보였었나보다.  그녀의 호의를 받는데 2년이란 세월이 걸린 동안 우리는 공손한 인사만 나누었다.

서로를 이해하면서, 그녀는 조금씩 타민족과 문화에 대한 관심을 표명했고, 나도 redneck 문화를 많이 알게 되었다.  기회 생길 때마다 줄곳 남부의 관습과 생활 습성을 알게 되면서 그만 남부 토박이들인 동료들과 색갈있는 사랑을 나누게 되었다.  우리는 단란한 직장가족으로 각자의 기쁨과 슬픔 함께하며 재밌게 일했다.

내가 갑자기 직장을 그만둔후 가장 힘들었던 것이 바로 이 단란했던 직장가족들과의 이별이었다.  눈길 하나에도 정을 담아서 주던 남부 토박이들의 순수한 우정이 자꾸 눈에 밟혔다.  그런데 며칠전 한 동료에게서 온 전화는 전혀 예기치 않은 충격이었다.  그녀가 병원에 입원해 있는데 나를 찾는다는 소식이었다. 

그녀의 병실을 찾았을때 하얗게 누워서 흐릿한 눈동자로 나를 맞는 그녀을 보며 뒤통수를 강하게 얻어 맞았다.  불과 6주만에 보는 그녀는 전혀 다른 얼굴이었다.  신체적인 질병이 아닌 정신적인 혼돈을 고통받는 그녀를 목격한 것은 진한 슬픔이었다.  손을 잡고 한시간 이상 수다를 늘어놓아도 촛점을 잃은 그녀는 반응없이 그저 무엇인가에 시달리며 불안에 떨었다.  옆에서 젖은 눈으로 그녀를 지키던 그녀의 남편은 일주일째 오락가락하며 혼란스런 그녀의 의식을 붙잡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결국 그녀가 정신병원으로 이동되는 것을 보면서 돌아선 내 가슴은 너무 무거워서 화창한 가을 날씨나 고운 단풍들이 줄지어 선 거리들이 오히려 민망했다.  사람의 일은 한치 앞도 모른다더니 어떻게 이런 일이 갑자기 일어나는지, 나이 드는 것이 겁나고 사는 것도 두려웠다.  내 앞일에 대한 불안도 확대되면서 만약의 사태에 완벽한 대비가 없는 인생이 슬펐다.    

매주 미장원 열심히 다니며 깔끔하게 머리 손질해야 편안해 하던 그녀가 엉클어진 머리로 세상에 동그마니 홀로 앉은 것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요즈음 그녀와 나눈 우정을 감사하며 그녀의 회복을 위한 기도로 내 하루가 얼룩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