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에 살면서 인간이 겪는 일들, “생노병사” 를 들었던 것이 자꾸 머리속에서 맴돈다.  새벽 4시에 시아버지가 돌아 가셨다는 응급실 의사의 전화를 받는 순간부터 지난 2주 우리의 하루는 우리 것이 아니었다. 

급하게 비행기표를 구하고, 작은딸을 불러서 집을 맡겨놓고 바로 켈리포니아로 떠났다.  전날 아침 통화해서 건전하신 것을 체크했는데 도무지 믿을 수 없다고 당황하는 남편을 달래며 긴 여행을 했다. 

시아버지는 특별한 분이셨다.  남편과 그의 동생을 입양해서 새 삶을 주신 분이다.  그리고 치매에 걸리신 시어머니를 10년이상 지극 정성으로 간호하신 분이다.  시어머니의 마지막 순간까지 간호와 기도로 지켜주신 분이시라 주위의 모든 사람들은 그를 하느님이 보내신 천사라고 믿었다. 

평소에 한번도 자신의 불편함을 밖으로 표현하시지 않으셨고 전화 하실때마다 온 가족의 근황을 자상하게 물으셨다.  그는 손녀딸들의 성장과 대가족인 내 친정식구들 모두의 변화에 일일이 관심가져 주셨다.  그렇게 모든 친지들과 이웃에 배려가 깊으신 분이셨다. 

빈집에 들어서며 남편과 함께 꼭 낯선 집에 들어서듯 조심스러웠다.  항상 문을 열어 주시며 미소로 맞아 주시던 그분이 남기신 공간이 너무 컸다.  집안 앞뒤의 커튼을 활짝 열고 따스한 켈리포니아 햇살이 비추던 뒤뜰로 향하는 유리에 얼굴을 대었다. 

새파랗게 잘 다듬어진 잔디밭이 눈에 부셨다.  담벽 안의 삼면의 꽃밭에는 장미꽃들과 여러 꽃들이 화려하게 피어 있었고 오렌지 나무에는 잘 익은 과일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평소에 장미꽃 가꾸길 좋아하신 시어머니의 꽃밭은 그녀가 떠난지 3년이 지났는데도 어김없이 아름다운 꽃들을 피운다.  이제 장미꽃 내다 보길 즐기시던 집 주인들이 모두 떠나서 인지 꽃 색갈이 더 처연해 보였다.   

한 사람의 땅위의 업적은 그의 장례식에서 들어 난다더니 어김없이 맞는 말이었다.  교회와 지역사회에 충실했던 젊잖은 신사였던 그분의 선행이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공개되었다.  그리고 피부색과 생김이 다른 두 사내아이에게 아메리칸 드림을 안겨주신 그분의 행적은 바로 남편과 시동생, 두 가족 모두에게 피보다 더 강한 인연과 사랑으로 남아 있었다.  여러 복잡한 감정은 뒤에 남은 사람들의 것이었다.  그러나 장례를 치르면서는 그분에 대한 사랑과 감사함만 가지고 싶었다.     

떠나 오는 날 새벽 3시까지 남편과 방마다 다니며 정돈하고 청소기를 돌려서 평상시처럼 깔끔하게 집안 정리를 했다.  빌도 지불하고 감사카드도 썼다.  허전한 마음을 채우려고 옛 사진들이 가득한 액자들을 가방에 담으면서 남편은 줄곳 “믿을 수 없어” 를 반복했다. 

빈집을 잠그고 돌아 오면서 장례예배를 집전하신 감리교 목사님께서 강조하신, 우리는 모두 “제 시간”에 이 땅을 떠난다고 하신 말씀이 회상되었다.  이 세상에 사는 동안 나에게 주어진 업무를 충실히 할것을 다짐하며 위대한 보통사람이었던 그분이 이제는 편안하게 안식하시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