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집 귀한 아들이 내 가족이 되겠다고 연말에 집에 오는 큰딸을 따라왔다.  작년 가을에 약혼을 했는데 내년 여름에 결혼을 한다면서 둘이서 열심히 결혼 준비를 하고 있다.  나이들고 똑똑한 어른아이들 덕분에 딸을 결혼시키는 내 준비가 가벼워서 좋다.

미네소타주 출신이라 눈과 얼음에 익숙한 이 사위감에게는 남부의 푸근한 크리스마스 계절이 영 어색하다.  그래도 남부를 소개하고 구색 갖추고 사는 시즌 분위기를 보여 주자니 하루가 바쁘다. 

적당히 복잡한 교통과 적당히 분주한, 인권운동의 산실인 남부의 작은 도시가 가진 색다른 정취를 보여 주었다.  스코트랜드의 St Andrews대학원을 마치고 돌아온 그에게 이곳 남부의 정경은 얼마나 색다른가.  그러나 반팔 옷을 입은 남부인들속에 섞여서 뜨거운 사이다 보다는 차가운 스위트 티를 마시는 재미를 배운다.  근교에 있는 마구간에 가서 딸들과 함께 말을 타고 낙엽진 벌판과 숲길을 타박이며 남부 전원생활의 소박한 여유도 맛봤다. 

낮에는 도무지 못 느끼지만 어두워지면 여기저기 살아 나는 불빛들로 어김없는 크리스마스 시즌도 봤다.  크리스마스 장식에 열중하는 취미생활을 가진 이웃들 중에 4개월에 걸려서 준비했다는 한 집의 장식은 상상을 초월한다.  지붕과 앞뜰이 완전히 하나의 거대한 무대가 되어서 7만개 이상의 LED 전구가 FM 93.3 채널의 캐럴에 따라 춤춘다.  빛과 색갈들이 시너지가 잘된 현란한 드라마를 연출하도록 집안에서 컴퓨터로 디자인을 조정하는 집주인은 대단한 창작력을 가졌다.

미시시피가서 장래 가족될 한인들과 부산스런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내고 열살때 들린 적이 있다는 뉴올리언스도 찾았다.  카타리나 태풍이 남긴 잔인한 흔적에 눈 따가워 했지만 가든지역에 있는 Commander’s Palace 식당에서 예전처럼 근사한 음식도 즐겼다.   

모빌 바닷가에 가서 찾아오는 손님을 맞는 전함 앨라바마의 당당한 위용 앞에 맞서기도 했다.  몽고메리 박물관에 들러서 18피트의 거대한 크리스마스트리를 장식한 이곳 앨라바마 예술가들이 만든 독특한 장식품들에서 토속성이 강한 남부 민속 예술을 보고 그 순수한 정감도 엿봤다. 

아무래도 눈과 얼음이 없는 남부의 따스한 하늘아래에 사는 우리가 겨울의 진미를 느끼지 못한다 싶었는지 내년 크리스마스에 미네소타 그의 집으로 우리 가족을 초대했다.  진정한 크리스마스의 기분은 개들이 끄는 썰매를 타는 것이나 눈 덮힌 들판에서 여러가지 야외활동하며 화끈하게 가질 수 있단다. 

추우면 움츠리고 정상적인 기능을 발휘 못하는 내 버릇을 아직 모르는 이 천진한 사위감은 “Mother of the Bride” 책을 선물하며 내 기분 이해한단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인 기막힌 인연 아닌가.  내 딸을 지극히 아끼고 사랑하는 그를 나도 아끼고 사랑하려고 노력한다.  만년손님 대접 잘 하려고 우리식구들 보다 키가 우뚝 솟은 그에게 높은 선반에 있는 예쁜 접시를 내려달라고 부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