굉장히 오랫만이다.  6년전인가 살짝 눈이 내린적이 있었는데 밤새 내리던 비가 오전에 눈으로 변했다.  살그머니 내리는 눈이 반가워 앞뜰에 나가서 눈을 맞았다.  신선한 겨울냄새가 천하에 가득했다. 

날씨를 색갈로 본다는 이곳 사는 한인 여자분은 오늘을 무슨 색으로 볼까?  투명한 유리벽에 부딪치는 눈은 아무래도 무지개 색갈이다.  날씨를 통해 색갈을 보고 색갈을 통해 그날 기운을 챙기는 버릇은 얼마나 깜찍한가. 

어쩌다 눈이 오면, 이곳의 모든 움직임이 멈춘다.  새들조차 어디론가 자취를 감춘 텅빈 거리다.  여행을 떠나자던 계획도 잊어 버린채 남편과 그저 아이들되어 눈을 맞으며 즐거워했다.  가벼운 기분으로 나도 눈되어 허공에 날면서 편안한 마음된다.

겨울의 추억을 갖고 찾아온 눈송이들이 오늘은 펑펑 쏟아지길 바랬다.  땅위에 천사도  그리고 눈사람도 만들고 싶었다.  세상의 모든 혼잡함을 잠시라도 하얗게 덮어 주기를 바랬다.  요며칠 어수선한 마음도 하얀 평안을 찾으리라 싶었다.  뒷뜰에 파릇하던 상추를 추수하고 그위로 비닐을 덮어주었다.  얼음 닮은 눈이 장갑 없는 손의 감각을 가져갔다. 

겨울이 왔다고 좋아했는데 그건 역시 꿈이었다.  잠깐 사이에 눈이 비로 변하더니 하얀 눈발들이 고양이 걸음으로 다시 살그머니 사라졌다.  아쉬움에 잠시 더 밖에서 서성이다 집안으로 들어왔다.  겨울외투나 장갑을 구할 필요가 다시 없어진거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와 눈 때문에 긴 주말 계획이 뒤바뀐다.  오늘 배달되어 온 타임지  표지에 있는 “The Science of Romance” 제목이 눈을 끌었다.  낭만적인 눈이 온 날 얼마나 적절한 제목인가.  살기위해 사랑이 필요한 이유를 과학적으로 분석한 특집이었다.  다양한 각도로 정밀하게 연구된 사랑에 관한 기사를 더러는 동의하고 더러는 글쎄하며 흥미롭게 읽었다.       

진정한 사랑과 영원한 사랑은 과학적으로 분해하기 힘든 환상이다 싶고 사랑의 오만가지 색갈에 머리가 어지럽다.  주름진 남편의 얼굴에서 편안한 사랑의 색갈을 보다가  밖의 날씨는 무슨 색갈일까 찾아 본다.  눈의 흔적이 사라지고 무겁게 젖어 있다.  그러나 오늘 날씨는 노란색인것 같다.  해바라기가 물결되어 출렁이는 들판이 눈앞에서 일렁인다. 

아무래도 하얗게 눈덮힌 세상에서 겪었던 겨울의 추억을 기억하기에는 이곳 남부에서 산 세월이 너무 길었다.  그러나 잠시 본 흰눈의 기억으로 옛친구에게 편지를 쓰고 싶은 충동이 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