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비로 축축한 거리다.  나를 끌고 밖으로 나선 개때문에 한발짝 한발짝 앞으로만 걷다가 한 집앞에서 주춤한다.  요즈음 그 집앞을 지날때면 늘 어지러워 진다.  

대학교수인 박사 아버지와 의사인 어머니, 그리고 총명한 아들이 둘이었던 인도계 가족의 집이다.  그집 큰아들과 내 큰딸이 같은 통학 버스를 탔다.  10학년 토론팀으로 활동하며 친했던 아이들로 자연히 그집 식구들과 만날 기회가 많았다.  한국 부모들처럼 이민 2세 교육에 지대한 관심을 가진 건실한 가족이었다.

그집 아이들은 굉장히 공부를 잘했다.  큰아들은 10학년때 벌써 고등학교 과정을 완전수료하고 내 딸이 11학년으로 올라갈때 15세인 그는 어번대학으로 장학금 받고 진학했다.  그의 동생도 형처럼 고등학교를 건너뛰고 13살에 어번대학으로 진학했다.  그후로 주말에 부모와 이웃을 걷던 이 아이들을 가끔 봤고 개를 데리고 걷던 그들 부모로 부터 그들의 소식을 가끔 들었다.

어번대학도 재빨리 마친 그는 그 또래의 아이들이 대학갈때 석사과정에 들어갔다는 소문을 들었다.  이 똑똑한 형제에 대한 소식을 몽고메리신문에서 크게 보도하기도 했다.  옛친구의 근황을 모르는 큰딸에게 MIT에서 박사과정을 공부하고 있다는 이 천재형제들의 소식을 언젠가 전해주었다.

2007년의 마지막 날, 한 인도계 친구의 집에 여러 동양계 이민 1세 부모들이 모여서 새해맞이를 했다.  훌쩍 성장해 버린 아이들 소식은 언제나 즐거운 화제다.  열심히 자리 잡으려고 노력한 우리 이민 1세 부모들이 뿌듯하도록, 이민 2세 아이들은 의사, 회계사, 생체 공학 박사, 약사, 간호원, 국제정치 전문가등 아주 다양한 분야에서 날개들 퍼덕이고 있었다. 

누군가 불쑥 그 천재형제들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큰딸의 친구였던 그 아이가 3년전에 자살했다는 끔찍한 소식이었다.  어번대학 다닐때부터 다른 대학생들과 워낙 나이차가 나서 친구들 없이 거의 외톨이로 공부만 했었다고 한다. 

사춘기부터 친구가 없었으니 아무래도 정서적으로 결핍된 성장기 였으리라며 부모들인 우리는 가슴을 쓸었다.  공부를 못해도 걱정이고 이렇게 너무 똑똑해도 사실 걱정이었다.  그리고 이민 1세 부모의 기대와 이민 2세 아이들의 정체성 찾기위한 갈등도 영향을 주었으리라는 의견들이었다. 

무엇이 그 아이를 죽음으로 몰고 갔는지 모르지만 장래성이 밝았던, 아주 똑똑했던 그를 기억하며 너무 가슴이 아팠다.  요즈음 개를 데리고 그집 앞을 지나면 가슴이 무너진 그의 어머니 얼굴이 휑하게 창문에 확대되어서 간절히 기도하게 된다. 

남들이 모두 부러워하던, 공부 잘하고 착하던 아들이 갑자기 자살했을때 그 부모는 무엇에 의지했을까?  그의 행동이 남아 있는 가족들의 세계를 파괴시킨다는 것을 그는 의식했을까?  그를 알던 모든 사람들의 가슴에 진한 슬픔이 되어 버린 그는 몇주째 내 가슴 깊이에 응어리로 남아 있다.  그의 죽음 소식을 들은 큰딸도 충격으로 한참동안 아무 말을 하지 못했다. 

이민 2세인 내 아이들은 밝고 아름다운 날들을 즐길줄 아는 보통 사람들이길, “Promote Good and Beautiful” 하는 딸들이길 바람은 이민 1세 엄마의 기도 제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