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매 달마다 또 주마다 여러가지 이유로 경축을 많이 한다.  더러는 관심이 쏠리고 더러는 남의 잔치로 흘려 보낸다.  그런데 이번은 내가 꼭 챙기고 지나가고 싶은 주라 출근 준비 서두르는 남편에게 슬쩍 귀뜸했다.  올 Women Veterans Week에는 부엌문 닫고 훨훨 날고 싶다라고.  소원이 이루어져서 우리집 부엌은 폐쇠시키고 훨훨 날라 미시시피 와서 친정엄마와 함께 Women Veterans Week보낸다. 

예전에 한국에서 남자들이 군대 갖다 오면 성숙해 진다고 했다.  군대생활을 견뎌내면 사회의 어떤 도전도 견뎌 낼 수 있다고 봤다.  오빠 둘은 군복무를 했지만 어려서 이민 온 남동생은 군대 근처를 못갔다.  50이 되어가는 이 동생의 규칙생활에 약한 습성을 친정엄마는 한국에서 군대생활을 못한 탓이라고 아직도 믿으신다.

사실 내 성격이나 생김이 용맹한 군인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나 젊은 시절, 어쩌면 좀 맹랑했던 결정이 새로운 인생을 탄생시켰다.  공부하기 힘들어 4년 휴가차 들어간 공군에서 나는 22년 말뚝을 박았다.  내 삶의 노른자를 군복입고 애국자가 되는 지름길에서 일한 덕분에 이곳 주류사회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다.

한인 교포들이 육군에는 많았지만 공군에는 드물었다.  22년 동안 여러 지역 근무하며 만난 한인계 공군들은 불과 4명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나도 희귀종 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내가 군대에서 한인이어서나 여성이어서 받은 차별은 별로 없었다.  만인 평등을 원칙으로 하는 군대 체제가 엄격했고 애초부터 내 속에 인종이나 성별에 대한 의식이 약했다.

힘든 훈련이나 줄기차게 받은 교육도 버텨낼 수 있었던 힘은 바로 좋은 사람들을 만남으로써 얻었다.  같은 군복을 입고 나라에 충성을 공개적으로 맹세한 처지들이어서 세계 어디서 근무하든 우리는 서로 돕는데 익숙했다.  내가 제일 싫어했던 M16을 분해해서 청소하는 일도 동료들의 도움으로 해냈다. 

어떤 직종이든 나름의 질서가 있다.  공군에서 정직과 최선을 다 하는것, 그리고 봉사정신을 투철하게 배웠다.  어떤 일이든 성심껏 일하면 진실이 통한다는 진리도 익혔다.  하늘은 돕는 자를 돕는다는 경험도 살았다.  나 자신에 솔직했던 생활이 결국은 솔직한 사회인으로 나를 키워 주었다.  군에서 줄기차게 받은 세뇌교육도 모두 나를 알차게 다둑여준 바탕이 되었던 셈이다.

집에서도 무엇에든 최선을 다 하라고 아이들을 부추겼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최선만 다 할 것이 아니라 하면서 즐겨야 한다고 믿게 되었다.  아무리 좋은 직장이나 돈을 많이 번다고 해도 일을 하면서 즐겁지 않으면 삶 자체가 피곤해 지는 것을 본 후부터다.

군근무 특성상 나 자신과 가족들이 많은 도전을 받았지만 또한 살아있는 역사를 앞에서 목격한 장점도 있었다.  이민자로써 다양한 체험을 직접 살아 본 기회를 준 공군에 늘 감사했다.  군에서 은퇴할때 나의 군 복무를 기념해서 국회의사당에서 펄럭였던 성조기를 받았을 때의 뭉클했던 감정은 내가 이 땅을 떠날때 가져갈 재산이다. 

알링톤 국립 묘지옆에 여군들의 봉사에 경의를 표하는 기념관이 있다.  1997년에 창립 멤버로 참가해서 후원했는데 뒷날 워싱톤디시에 들렀을때 찾아 갔었다.  미국 역사상 230년이 넘는 오랜 세월 2백만이 넘는 여성들이 국방에 헌신했다.  그런데 그중에 한국출신인 나도 당당하게 함께 봉사해서 대단히 기뻤다. 

이런 용감했던 여성들을 기념하는 이번 일 주일 뿐만 아니라 오늘도 국방에 헌신하는 모든 여성들과 함께 우리의 삶을, 우리의 나라 사랑을 자축하고 싶다.  그리고 세상의 평화를 추구하며 God bless America를 간절히 빈다. 

***지난 5월 23일 중앙일보 (애틀란타)에 실렸던 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