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 혼자 해외 근무하는 동안 아이들을 도우러 텍사스에서 오신 친정엄마가 사위를 뒷마당에 데리고 가서 땅을 파게했다.  장모 지시따라 단단하게 뭉친 찰흙 땅을 파면서 허덕였을 사위나 원하는 깊이로 파지 않는 사위로 짜증이 났을 장모가 어떤 분위기를 연출했을지 채소밭을 만든다는 편지를 받고 혼자 웃었다.  친정엄마와 남편은 일본어로 대화한다    

두 사람 다 농부출신이 아니어서 땅을 파고 흙과 비료를 사서 빈 공간을 채우면서 많은 실랑이가 있었다.  똑똑한 엔지니어 사위는 찰흙지라 흙과 비료에다 모래를 섞은 근사한 밭을 만들어 장모를 주었다.  현명한 장모는 모래가 눈에 까시인 밭에 여러 모종을 사서 심고 매일 정성껏 물을 주었다.  첫해에는 농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장모는 채소밭에 모래를 섞은 사위를 탓하셨다. 

집에 돌아오니 남편은 그의 논리로 나를 설득했고, 친정엄마는 채소들이 뿌리를 내릴 수 없는 모래밭을 보여주셨다.  이렇게 마련된 채소밭을 물러 받은 나는 해마다 조금씩 농사 일을 배웠다.  카운티 extension service의 조언도 받고, 겨울이면 흙과 비료를 더 보탠후 밭을 골고루 뒤집어 산소를 마시게 했다.  다양한 채소들 모종을 심으면 잘 커주는 채소도 있었고 시들하게 자라다 마는 채소도 있었다.  하지만 토질은 조금씩 안정되어 갔고 나도 나름의 요령을 터득했다.   

화학비료 안먹고도 잘 자라 주는 부추, 시금치, 깻잎, 상추가 고맙고 고추, 토마토의 풍성한 열매나 변덕스럽지만 심심찮게 열매를 맺어 주는 오이나 가지도 정겨웠다.  그리고 채소들에 섞여서 여름내내 우아한 흰색과 보라색의 꽃을 줄기차게 피우는 도라지의 아름다움에 반했다.    

벌레가 생기면 적당히 비켜주고, 파릇한 채소잎을 먹어 치우는 가든 달팽이들과는 맹렬히 싸워도 어설픈 주말 취미였던 농사가 의외로 풍성한 수확을 주었다.  싱싱한 채소들을 한보따리씩 들고 출근해 동료들에게 돌리고 이곳에 이사온 한인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가을에는 고추지를 담구어서 많은 친구들에게 선물하니 이제는 누가봐도 완벽한 농부이다. 

좋은 자연환경에 농부가 된 나처럼 채소 키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주위에 많다.  내가 다니는 성당의 신부님 사택 뒤뜰에 거대한 채소밭을 가꾸는 신도가 있다.  토마토, 호박과 가지등이 싱싱하게 자라고 줄줄이 옥수수가 단단하게 영글고 있는 것을 그는 채소밭 앞에 세워 둔 St. Joseph 조각상 덕이라고 믿는다.  우리집 호박들이 잎만 무성하고 열매를 맺지 않아도 우리는 종종 이 밭에서 자란 호박을 잘 먹는다.  

해마다 주정부는 앨라바마산 농산물을 먹자는 운동을 활발히 벌린다. 식품점에서 파는 농산품의 5퍼센트만이 앨라바마산이다보니 농부들이 힘든다.  그래서 그들이 직매할 수 있는 야외장이 곳곳에 선다.  내 사는 지역에도 5월말부터 토요일 오전에 근교 가족농장들이 키운 채소나 과일들을 가져와서 판다.  여름마다 만나는 농부들과 인사하며 그들이 직접 키운 싱싱한 농산물을 구하고 그들로부터 농사의 지혜도 배운다.  지난 토요일은 한 농장에서 가져온 찰옥수수를 보고 좀 욕심을 냈다.  복숭아와 자두를 산 남편은 내가 안고온 한 보따리의 옥수수 양에 질겁을 했다.     

땀과 노력을 쏟으며 채소들을 돌볼때 시간이 지나감이나 어지러운 세상사를 잊는다.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가는 인생이라는데 흙을 만지면서 가지는 안정은 이상하리만큼 신선하고 만족감을 준다.  아무것도 확실치 않은 세상살이에 그래도 정확하게 믿을 수 있는 것은 정직한 흙이라 싶다.  심는 대로 난다.  돌보임을 받은 만큼, 수 백배로 불려서 확실한 믿음을 돌려준다.  곳곳에서 식량난으로 허덕인다는 뉴스에 미안하지만 지난 2년동안 식품 가격이 45페센트 올랐다는 소식에는 아랑곳 없다.  이렇게 직접 채소를 키워 먹을 수 있는 소박한 행복을 즐기며 오히려 일기예보에 더 민감하게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