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곧 결혼한다니 이곳의 한 토박이 친구가 어떤 신랑감이냐고 물었다.  미네소타 출신이라 했더니 곧 그의 표정이 동정심으로 가득차며 “Oh my God!  I am so sorry.” 란다.  하필이면 왜 양키와 결혼하게 되었느냐는 그에게 나는 한 수 더 떠서 우리는 천주교인데 사돈되는 가족은 루터란이라 했다.  미네소타에서 일어나는 천주교와 루터란 교인들간의 알력을 아는 우리는 함께 크게 웃었다.  남부에 살면서 토박이들과 허심탄회하게 지내다 보니 이런 인사를 받아도 전혀 반감이 생기질 않는다. 

친정엄마는 알롱달롱 8남매를 두셨는데 그중 딸 하나만 한국에 남았고 나머지 가족들은 오래전에 미국으로 이민왔다.  그래서 미국 전역에 흩어져 사는 친정식구들은 고향이 그리운줄 모르고 잘 지내지만 한국에 외톨이로 남았던 언니는 오랫동안 가족이 그리워 많이 울었다고 했다.  그런데 그 언니가 조카 결혼식 참석한다고 며칠전에 미국에 왔다. 

이번이 3번째, 10년에 한번씩 친정식구 찾아 미국와서 매번 새롭게 감탄하는 것은 무성한 숲들과 푸른 잔디밭, 그리고 시원하게 열린 하늘과 맑은 공기이다.  고층아파트에 살면서 익숙하게 듣는 자동차 소음과 사람의 소리가 이곳에서는 정적과 새소리로 바뀐것이다.  이렇게 조용해서 외롭지 않느냐며 직장 그만두고 어떻게 소일 하는지를 물었다.      

맑은 아침 공기 마시며 개와 산책을 하고 뒤뜰 채소밭의 흙을 다둑이며 즐거워하는 나를 기이하게 봤다.  신선하게 자란 나풀한 채소들 수확해서 맛있는 비빔밥을 만들고 도라지 뿌리도 캐서 반찬을 만들었다.  그동안 배운 깔끔한 된장찌게, 갈비찜도 만들고 시원한 냉면도 만들어 대접했다.  한국음식 못하던 내가 이제 제법 맛갈있는 음식 만든다며 신기하단다.  인터넷 선생덕이지만 아무튼 이번에 예전의 나와 전혀 다른 나를 보여 주었다.    

우리는 느긋하게 샤핑센터를 걸어 다니며 여러 가게를 기웃였다.  사람에 부딪치지도 않고 옷 많이 입어본다고 짜증내는 점원도 없다.  한국과 미국 물건의 차이와 가격을 비교 했다.  유명브랜드에 민감한 한국인들의 취미와 유행을 별로 따르지 않는 이곳 사람들의 습성에는 분명 대단한 거리가 있었다.  호주와 태국을 관광한 언니는 그곳들 보다 미국의 물건 값들은 훨씬 싸다고 좋아했다.    

신부님 사택의 채소밭에가서 채소밭 주인인 신도와 함께 풀을 뽑았다.  대화가 통하지 않아도 재미있다면서 언니는 그의 밭 한쪽의 잡풀을 정리해 주었다.  지난번에 내가 금싸라기 참외맛을 보여 주었더니 좋았나 보다.  그는 내년에는 한국 참외도 심어 보고 싶다고 한다.  호박과 가지를 수확해서 돌아 오는 길에 성당 사무실 뒤의 무화과 나무에서 달콤한 무화과도 따먹었다.  무화과 나무를 처음 본 언니가 친정엄마에게 가져가자고해서 둘이서 한 웅큼씩 땄다.

며칠 이곳에서 내 생활을 지켜보더니 전원생활하며 하고 싶은 일 하고 사는 것을 부러워 한다.  틈틈히 컴퓨터 잡고 앉아 좋아하는 글 쓰고, 클럽모임 다니며 이곳 친구들과 활발하게 만나고 문화행사 찾아 분방한 생활이 좋아 보인단다.  그리고 예전의 깐깐했던 성격이 많이 푸근해진 것을 더 좋다하며 뜨거운 태양에 거슬린 내 피부를 걱정해준다.  변한 성격을 지적 받고 보니 역시 남부의 풍토와 사람에게서 받은 풍부한 정감이 내 정신 건강에 좋았다. 

하지만 내 속은 닥아오는 딸의 결혼식에 조금씩 긴장한다.  축하차 찾아온 가족과 멀리서 결혼선물을 보낸다며 전화한 옛친구를 통해서 더욱 조급해진다.  야무지게 자신의 결혼식을 준비하는 당찬 딸을 도우며 한국의 엄마들처럼 딸 결혼식의 총 지휘자가 아니고 손님같다.  하지만 시간은 어김없이 지날테고 며칠후면 나한테도 근사한 사위가 생긴다.  양키 사위이면 어떤가.  내 딸을 지극히 사랑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