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케인 구스타브가 카테고리 4로 강세를 보태면서 걸프만으로 북상한다는 뉴스가 속보로 줄곳 TV 화면을 채운다. 시민들을 대피시키기 시작했다는 뉴올리언스의 긴박한 소식에 3년전 이때쯤 걸프만 바닷가를 강타한 허리케인 카타리나의 기억을 떠올린다. 2005년, 그때 쓴 글을 다시 읽어 보면서 새삼 천재지변의 무서움에 떤다.
…걸프만 가까이 살면서 해마다 6월부터 11월까지 허리케인과 토네이도와 숨바꼭질을 한다. 바람의 속도에 따라 올라가는 태풍의 카테고리를 강조하는 방송인들의 옥타브가 높은 목소리를 따라 내 긴장감도 올라간다. “설마…” 하며 조금 용감하게, 또 별 탈없이 지나온 세월을 생각하며 변덕스런 날씨를 맞았는데 이번에는 달랐다. 날벼락을 맞았다.
걸프만 바닷가에서 놀다가 남편과 나는 호텔에서 통보해준 대피 경고를 받고 거칠어 지는 파도와 강하게 불어 오는 모래 바람을 뒤로 하고 바닷가를 떠나 왔다. 긴 대피 행렬에 섞여서 65번 고속도로를 천천히 올라 오며 미시시피에 사는 친정 식구들은 집과 가게들을 나무판으로 가리느라 무척 바쁘다는 소식을 들었다.
매번 북쪽으로 대피했다가 돌아가도 피해가 별로 없었다며 그곳 사는 식구들 깡이 많이 늘었다. 키우는 개도 걱정이라 이번에는 “고지를 사수한다” 며 이웃들과 정보 교환 열심히 한 후에 모두들 집에 있기로 결정했다고 했다. 계속 전화해서 카테고리 5라고 겁을 주었지만 친정엄마와 조카들만 몽고메리로 대피해 오고 나머지 가족들은 개와 함께 집안에 꼭꼭 숨었다.
카타리나가 강타해서 심한 상처를 주고 북상할 동안 우리는 소식이 끊어진 그곳 가족들 걱정으로 불안한 며칠을 보냈다. 직장에는 “미안합니다” 하고 집에서 엄마와 TV로 끔찍한 걸프만 지역의 피해 보도를 보며 불안에 잠겼었다. 3일 후에 간신히 전화가 연결되어 모두 무사하다는 소식을 들을때까지 친정엄마의 걱정과 기도가 계속 되었고 미국에 흩어져 사는 가족들과 한국에서도 걱정하는 친척들의 전화가 끊이질 않았다.
전화로 부탁받은, 음식을 요리하기 위한 작은 프로판 개스 그릴과 파손된 지붕을 위한 방수포등 몇가지 구호품을 준비했다. 그리고 개스통을 구하러 다녔는데 몽고메리에서 2-5 갤런 개스통이 가게마다 품절이어서 나중에는 옆집의 개스통들도 빌렸다. 트렁크에 구호품과 개스를 싣고 남편과 둘이서 미시시피로 출발했다.
미시시피 바닷가 지역으로 가까이 갈수록 파손된 집들이나 건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빌록시로 들어가며 우리는 “Oh My God!!!” 밖에는 언어를 잃었다. 언젠가 영화에서 본 철저하게 파괴된 장면들이 무심하게 뜨거운 햇빛아래 노출되어 우리를 맞았다.
파손된 신호등들을 비켜서 조심해서 들어간 도시의 거리는 너절하게 황폐했고 좌우 나무 잎들은 온통 갈색으로 변해 있었다. 잎이 마른 나무들이 둥치가 부러진채로 무너진 건물들과 뒤엉켜 있었다. 푸르고 싱싱했던 나무의 색갈이 을씨년하게 퇴색한 것은 바람에 몰려 온 바닷물을 뒤집어 쓴 탓인데 파괴된 건물들과 엉켜서 썰렁하고 음산한 분위기였다.
차들이 별로 없던 거리에는 FEMA나 경찰차들과 전기회사 보수차들이 바쁘게 다녔다. 군복을 입은 군인들이 휑한 상가의 거리를 지켰고 FEMA 단원들은 위험한 거리를 차단시켰다. 그리고 공중에서 낮게 날라 다니던 군용 헬리콥터 소리가 어수선한 마음을 더욱 어지럽혔다.
텍사스에서 미시시피로 친정 식구들이 몇 옮겨 온 것은 카지노가 들어 오기 전이다. 친정 식구들은 바닷가 작은 도시, 고목들 사이로 아름다운 고옥들이 포스트 카드의 그림으로 조용한 동네에 이주해서 그동안 든든한 뿌리를 내렸다. 카지노가 생긴 후에는 한가함이 사라져서 좀 서운했지만 그런대로 번창해서 방문하던 우리도 신이 났었다. 하지만 날씨의 변덕에 그곳 식구들은 늘 불안한 여름을 보내곤 했다.
고지를 사수한 친정 식구들은 끔찍한 피해의 충격속에서 90도가 넘는 더위를 버티며 많이 지쳐 있다가 우리를 반갑게 맞았다. 그들은 보험처리를 기다리며 넘어진 나무를 짤라내고 휘몰려온 파편들이나 나뭇잎을 청소하며 엎으진 일상을 정리하고 있었다. 우리는 앞뜰에서 뿌리채 뽑힌 레몬나무에서 떨어진 레몬들과 구호품으로 얻어 온 얼음으로 레모네이더를 만들어 마시며 안밖에서 불어 오는 더위를 달랬다.
바닷가를 끼고 있는 90번 국도는 긴 구간이 파손되어 통행을 자유롭게 할 수가 없었다. 예전에 내가 지독히 부러워했던 그림같던 전세기의 고옥들은 집터만 남겨 놓고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처절하게 늘어진 참상에 가슴이 내려 앉았고 남편도 나처럼 망연자실 했다. 우리가 본 상황은 극히 일부였다. 인간의 언어로는 무엇이라고 설명할 수가 없도록 카타리나가 준 피해는 엄청나서 그 손실을 다 확인하게 되는 미래가 두려웠다.
이번 참변은 경제적인 손실만 아니라 피해지역에 살던 사람들에게 냉정한 변화도 몰고 왔다. 가족을 잃거나 집과 직장을 잃은 사람들, 그들의 존재가 뿌리채 뽑혀 버린 상황에서, 아직 그 충격을 쓰다듬고 있는 많은 생존자들에게 내일을 계획하라고 무리한 요구를 하는 현실이었다.
걸프만의 아름다운 28마일의 해변가를 완전히 파손시키고 여러 곳의 지도마저 바꾸고 허리케인 카타리나는 사라졌다. 폐허를 딛고 다시 오뚜기처럼 일어나야 하는 친정 식구들을 포함한 피해 받은 많은 사람들, 그들의 아픈 상처가 너무 깊었다. 빌록시에서 더위속에서 허덕이며 이틀을 보내며 나는 천재지변 앞에 우리들 인생은 정말 거리를 덮은 마른 잎처럼 힘이 없고 부질없다는 영혼을 뒤흔든 경험을 했다.
전에는 “햇빛은 쨍쨍, 모래알은 반짝” 하는 좋은 동네로 놀러 오라고 성화 부리던 동생은 우리가 떠난 후에 전기가 들어와서 이제는 살 것같다고 전화했다. 그리고 미국 살면서 별 경험을 다 한다면서 구호품으로 받아 온 군인들의 야전 식량인 MRE가 너무 맛 있다고 하면서 웃었다. 그동안 이룬 사업체가 무너졌어도 긍정적인 자세를 지키려는 가족들이 고맙고 좀 이기적이지만 지금은 우리 가족들이 살아 있음에 감사하고 있다…
허리케인 구스타브가 내일 저녁쯤 걸프만 바닷가에 도착한다는 뉴스이다. 폭풍 전야라 다시 숨죽이게 된다. 미시시피 식구들은 허리케인을 대비하고 대피경보가 나면 몽고메리로 피난올 준비를 한다. 더불어 나도 손님 맞을 방들을 치우면서 이번 허리케인은 카타리나처럼 심한 충격을 주지않고 슬쩍 지나가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