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기를 좋아하던 어린 시절에 내가 꾼 꿈이 있었다. 훗날 어른이 되면 책방의 주인이 되는 것이었다. 그러면 하루종일 마음껏 책을 실컫 읽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꿈이 비슷하게 이루어져서 요즈음 서점에서 책을 판다. 몽고메리 다운타운에 있는 도서관은 앨라바마 주정부 청사 도시의 중앙 도서관인 셈이다. 원래가 도서관으로 지어진 건물이 아니어서 내부 구조도 미흡하고 시설도 좀 후진 낡은 건물이다. 한 도시의 심장이라는 도서관으로써의 면목으로는 한참 부족한 건물이다. 하지만 그곳에는 정신의 양식인 많은 책들이 있다. 보통은 집 근처의 도서관을 즐겨 찾지만 한국 책들은 그곳에서 빌린다. 도서관의 입구 왼편에는 책을 파는 재미있는 서점도 하나 있다. 이곳은 몽고메리 카운티 도서관들에서 폐기하는 책들과 시민들이 기증한 책들을 모아서 아주 싼 값에 판다. 조금 인내심을 가지고 진열된 책장의 책들을 살펴보면 가끔 보석같은 진기한 책이나 잉크 냄새 나는 신간들도 구할 수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다. 이 서점은 ‘도서관의 친구들’ 이라는 자원 봉사자들이 돌아가면서 운영한다. 군에서 같이 퇴직한 한 친구가 이 서점의 총책임자로 봉사를 하고 있어서 이곳의 단골 손님이었던 나도 자연스럽게 도서관의 친구가 되었다. 책방을 운영하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일을 해야한다. 다양한 책들을 종목 별로 분류해서 해당 책장에 작가들 이름의 알파벳 순서대로 진열하거나 도서 번호대로 진열을 해야한다. 서점의 공간이 좁아서 많은 책들은 도서관 2층의 한 거대한 방에 분류해 놓고 자리가 생기면 가져와서 책장을 채운다. 색다른 책을 찾는 손님들의 주문도 받고 출판된 지 오래된 책들이나 좀 험하게 다루어진 책들은 골라내서 3권에 25센트로 파격 세일한다. 어지러진 책장의 책들을 가지런히 정돈하면서 내 취미와 전혀 다른 분야의 책을 쓴 작가들의 이름도 틈틈히 익힌다. 눈길 끄는 책을 읽고 싶지만 정리 해야할 책들이 많고 또 끊임없이 이어지는 손님들을 맞느라 한가하게 책 읽을 여유가 없다. 그러다가 찾아온 낯익은 친구들에게 그들의 취미에 합당한 책들을 권하기도 하고 또 내가 읽고 싶은 책도 골라서 산다. 기증할 책들을 꾸준히 가져 오는 기부가들이 고맙고, 열심히 골라서 사 주는 손님들이 고맙다. 특히 이사가는 사람들이나 요양원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집정리하며 많은 책들을 이 서점에 가져온다. 재미있는 사실은 나도 그렇지만, 이곳에서 산 책들을 읽고 다시 이곳에 가져와 기증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는 사실이다. 아무튼 여러 사람들의 사랑을 받은 좀 낡은 책들을 나는 참 좋아한다. 오늘은 유난히도 많은 책을 팔았다. 책을 들고 교도소를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봉사자 부부는 단골 손님이다. 그들은 오늘도 스페인어나 한국어 책등 외국 서적을 닥치는대로 잔뜩 골랐다. 어떤 한국 목사님이 선교의 체험을 기술한 책이라며 그들이 골른 한국책의 내용을 알려 주었더니 굉장히 좋아했다. 임신한 딸과 함께온 중년의 여자는 육아에 관한 책들과 동화책등 거의 150권 사갔다. 그리고 프리마켓에 가게를 가진 여자도 많은 종교서적과 서부물 책들을 골라서 두 번이나 무겁게 들고 나갔다. 이제는 낯익은 단골들과 그들이 찾는 책들도 조금 파악하고 도와 줄 수 있어서 좋다. 매 주 이렇게 책 냄새에 섞여서 책과 일부가 되는 시간들은 몸은 피곤해도 마음은 늘 행복하다. 어릴적에 꾸었던 꿈처럼 책방을 운영하며 책으로 둘러싸인 작은 공간에서 지내는 시간이 이렇게 아늑할 수가 없다. 언젠가 딸과 함께 오랜 시간을 보낸 프랑스 파리의 노트르담 사원 맞은편 세느강변에 있던 독특한 서점, ‘Shakespeare & Company’처럼 이 서점은 푸근함을 준다. 그리고 젊은 시절에 신나게 찾아 다녔던 청계천가의 헌책방들처럼 애착이 간다. 이 서점에서 파는 책값은 보통10센트에서 2불정도이다. 이런 푼돈을 모아서 만든 몫돈은 도서관을 위한 좋은 프로그램에 기금으로 쓰인다. 나는 오늘도 다양한 책들을 아주 싼 값에 팔면서 어릴적 꿈이 이루어진 것이 신기해서 혼자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