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9월2일

외국에 친척도 없고, 오래된 지인도 없이, 부부 단 둘이서만 살아가는 우리에게 사실상 가장 큰 버팀목은 서로이다. 내가 스톰에게 스톰이 나에게... 그렇게 거의 4년을 지내오고 있다. 결혼 후 일 년 동안은 참 많이 다투기도 하고 화해도 하고 또 언제 그랬는가 싶게 없으면 못 살듯 닭살부부가 되기도 했지만, 변함없는 사실은 스톰이 가는 곳에는 늘 내가 있었고, 내가 있는 곳에는 늘 스톰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싸우면서도 스톰이 해외출장 비행기에 오를때마다 늘 그의 옆자리에는 몸을 비비 꼬면서 다리를 얹었다 내려놨다 난리법석을 치는 내가 있었고, 내 옆에는 비행기 창문에 얼굴을 바싹 갖다데고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광경을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살피려 엉덩이를 들썩데는 스톰이 있었다. 그렇게 쌓아온 정이 이만큼 시간이 흐르고 나니 무척이나 애착이 간다. 랄라가 있어서 이제는 둘이서만 여행하는 일은 한 동안 접어야 하겠지만 그래도 그 때 그만큼 열심히 둘이 붙어 다닌 결과, 랄라를 데리고 탑승하는 비행기에서도 우리의 팀웍은 칭찬받을만 하다.

결혼이라는 것, 아직 새내기에 불과하지만, 분명히 나와 네가 만나서 우리가 되는 과정임에는 틀림없다고 매일 느끼며 산다. 가끔은 나의 색깔이 희미해 질때도 있고, 그 만큼 나로 하여금 스톰의 개성이 옅어져 버리기도 한다. 특히 랄라가 태어난 이후부터는 정말 '우리' 가 되지 않으면 '육아'라는 험한 산을 오를수 없다고 스톰과 나의 지친 몸이 말해주었다. 스톰과 내가 좋아하는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 라는 노래를 들어보면 부부가 얼마나 크고 작은 인생의 이정표를 함께 쌓으며 살아가게 되는지 잘 알 수 있다.

어젯밤 장보느냐, 랄라 카시트 빨래하느냐, 몸이 지칠때로 지쳐있던 스톰이 오후에 담가놓기만 하고 내가 미처 빨지 못했던 내 운동화를 쓰윽쓰윽 문질러 빠는 소리를 랄라를 재우면서 들었다. 남편의 가사참여... 말처럼 쉽지않다는 것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스톰이 항상 말하듯이, '내 일이 그대 일이고 그대일이 내 일'이라는 말, '둘 중 하나가 그날의 과제를 마치지 못하면 어차피 우리 둘다 편한 잠자리에 들지 못하기에 같이 치우고 같이 쉬자' 라는 스톰의 가치관이 변함 없었기에 '우리가 되기까지의 길'을 스톰과 함께 걸어오는 동안 힘들고 어렵기 보다는 오히려 내게는 즐겁게 여겨졌음이 솔직한 나의 고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