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9월 21일

해가 제법 빨리 지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저녁을 먹고 산책을 다녀와도 아직 해가 좋았었는데, 얼마전 부터는 같은 시간에 노을을 바라보며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고, 어제 저녁에는 이미 해가 저물어 하늘에 떠있는 별을 바라보며 걸었다. 그렇게 올해 여름은 우리에게 추억이 되고, 우리는 서정적인 가을을 여유로운 마음으로 맞이하려 한다.

어제 오후 갑자기 거센 바람과 장대비가 잠시 내렸는데, 거실 창에 "후두둑" 하며 부딪히는 굵은 빗방울 소리가 마치 하늘에서 낙엽이 떨어지는 듯 했다. 비가 내리는 동안 나는 랄라를 안고 창 밖을 바라보며 둘이서 조용히 빗소리를 감상했다. 아쉽게도 비는 30분 정도 내리다가 그쳤고, 이내 햇님이 반짝하고 고개를 들었다. 잠시후 랄라는 낮잠이 들었고, 나는 다시 분주해 졌다.

우리집 월중 행사이기도 하고, 사계절을 맞이할때 마다 내가 즐기는 취미 생활이기도 한, 가구위치 바꾸기와 청소를 시작한 것이다. 일단 음악은 Jazz FM 91 으로 고정시켜 놓고, 바닥에 있는 모든 물건들을 치운 뒤, 빗자루로 싹싹 쓸고, 걸레로 뽀드득 닦아내면 밑화장 완성이다. 그 다음 순서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차례이다. 많지 않은 세간이지만 그래서 혼자서 움직이기에 더 좋다. 힘은 들어도 끌고 당기고 하다보면 계절에 맞는 분위기를 만들수 있으니까...

나는 초를 참 좋아하는데, 한국 음식은 맛은 있지만 집안에 음식 냄새를 오래 남겨두는게 싫어서 혼자 살때부터 여러가지 향이 나는 초들을 즐겨 피웠다. 여름에는 주로 상큼한 딸기나 레몬등 과일향류의 초를 피우고, 가을, 겨울에는 따뜻하고 달콤한 바닐라 향을 좋아한다. 깔끔히 정돈된 소파위에 핑크빛 쿠션을 통통 두들겨 올려놓고, 크림빛이 도는 바닐라 초에 불을 붙이고, 쟈스민 차 한 잔과 좋아하는 책을 옆에 두고보니 그렇게 마음이 편안할수가 없었다. 가을을 맞아 한결 아늑해진 우리집 거실을 푸근한 엄마의 마음으로 수줍은 신부의 미소로 한 참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