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1월19일

스톰과 랄라와 함께 달리고 걷기를 번갈아하며, 올 여름 동안 저녁식사 후면 늘 찾아 나섰던 산책로에 엄마를 모시고 간다. 푸르름을 자랑하던 나무들은 이제 그 무성했던 잎마저 모두 떨구고 바닥에는 낙엽이 가득 쌓였고, 활기차 보이던 시냇물도 가을이라는 계절 탓이지 웬지 힘없고 쓸쓸해 보이기 까지 하다.

유난히 젊고 예뻤던 엄마는 내가 학교 다니는 동안 우리학교의 유명인사 였고, 중고등학교 시절 남자선배들은 학교 축제때 우리엄마 얼굴 한 번 더 보려고 교실을 기웃거리고는 했었다. 그래서인지 같이 다니면 지금껏 엄마라는 소리는 별로 못 들어보고 늘 이모 아니면 언니다.

지금도 여전히 곱고 이쁘시지만 그래도 가까이서 엄마를 보니 눈가에 주름도 꽤 자리를 잡으셨고, 예전만큼 엄한 목소리로 나의 잘못을 꾸짖으시지도 않는다. 랄라를 대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 우리 엄마가 맞나 하는 생각마저 든다. 슬하에 많은 자녀을 보신것도 아니고, 오로지 나 하나 낳아 키우시면서 하나있는 딸 예쁘게 잘 키우시려는 욕심도 남달리 많으셨고 그에 맞게 무던히 노력하신 분이다.

사람이란게 참 묘한것이... 엄마를 마주보고 앉아 있을때는 없었던 감정들이 이렇게 몇 발자욱 뒤에서 엄마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마음이 뭉클해지는건 왜일까? 워낙 갸냘픈 몸을 가지시기도 했지만 좁은 어깨가 더 작아보인다. 잠든 랄라가 등이 아플까봐 유모차를 뒤로 젖히고 조심조심 걸어가시는 모습이 자꾸만 내맘을 짠 하게 한다.

똑같은 산책로... 스톰과 랄라와 히히덕 거리며 좋다고 걸어가던 이 길을 엄마를 모시고 함께 걷노라니 애잔함에 가슴이 오그라든다. 딸하나 달랑 있는거 멀리 떨어뜨려놓고 외로워 하셨을 엄마 생각 한번 깊이 해보지 않고 오로지 우리만의 생활속에 푹 파묻혀 살아왔던 나의 지난 4년이 너무나 죄송스럽다. 엄마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