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1월22일

지난주 기다리고 기다리던 소포가 드디어 한국에서 도착했다. 내가 기다리고 있다는걸 알았던지 예정보다 조금 늦게(아마 한번 튕겨 본게 아닌가 싶다) 도착한 소포... 가위 끝으로 대강 테잎부분만 뜯고는 나머지는 거의 3일째 밥구경 못한 사람이 라면봉지를 뜯는 속도로 단숨에 뜯어버렸다.

아하! 바로 이기분~
상자속 버블랩 안에는 진귀한 보물이 마구 쏟아져 나왔다.
내가 찜해둔 이쁜 가방, 스타킹, 언니와 엄마 (공식명칭은 시누이와 시어머니) 조카들 사진, 언니가 우체국에서 막 적어보낸 듯한 메모편지, 실레화, 아폴로, 쫀쪼니, 석기시대, 팡팡, 왕 꿈틀이, 꼬마곰, 드라큘라 거미,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 약.

사실 이 소포의 의미는 내 약을 보내주신다는 거에 그 깊은 뜻이 담겨져 있지만, 나에게 약은 제일 뒷전이다. 정성껏 언니가 보물처럼 숨겨보내준 약은 식탁위에서 덩그러니 천정만 올려다보며 누워 있었고, 난 가지각색의 불량식품들을 어디다 랄라 몰래 숨겨 두고 오랫동안 먹을수 있는가에 대해서만 나의 모든 정신을 집중시키고 있었다.

남이섬에서 찍었다는 언니와 엄마가 나란히 앉아있는 사진속에서 두 모녀가 닮아가는 흔적이 고스란히 베어나왔다. 노란 은행잎들이 카펫트처럼 깔려있는 남이섬도 아름다왔고, 이곳 단풍과는 사뭇 다른 이미지를 품고 있는듯, 뭔가 따뜻하고 아기자기한 느낌이 다가왔다.

어려서나 아기 엄마가 되서나 나의 불량식품에 대한 사랑은 변함이 없다. 그와 마찬가지로 멀리서 날라온 누런 소포상자가 주는 신비함과 열어보았을 때의 기쁨은 여전하다. 아니 지금에 와서는 그 기쁨이 어릴적보다 더 클지도 모른다. 덜렁이 올케를 위해 이렇게 소중한 보물상자를 보내준 언니에게 고마움의 키스를 날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