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2월14일
몸도 나른할때 독서만큼 나에게 묘약은 없다. 따끈한 대추차 한 주전자를 끓여놓고 달큼한 맛으로 혀를 위로해가며 책장을 넘길때 난 정말 너무나 행복하다. 학교다닐때는 한 며칠 책 볼수 있을 만큼만 아파서 평소 시간이 없어서 못 읽었던 책들을 실컷 침대에 누워 읽었으면 좋겠다는 엉뚱한 바램을 가져보기도 했었다.
랄라가 낮잠 잘때 몇 시간을 틈타 무서운 기세로 읽기 시작한 박완서 씨의 '나목'을 다 읽은 후, 자꾸만 마지막 페이지로부터 눈을 떼지 못하고 몇번씩이나 그 내용을 되뇌어 본다.
"그러나 그뿐, 이미 그의 눈엔 10년 전의 앳된 갈망은 없다. 그뿐이랴. 여자를 소유하고 가정을 갖고 싶다는 세속적인 소망 외에는 한번도 야망이나 고뇌가 깃들여 보지 않는 눈. 부수수한 머리가 늘어진 이마에 어느새 굵은 주름이 자리잡기 시작한 중년의 그가 나는 또다시 낯설다...나는 충동적으로 그의 이마의 주름진 곳에 그런 키스를 퍼부었다. 그가 낯선 게 견딜 수 없어서였다. 그가 아주 타인처럼 낯선 게 견딜수 없어서였다."
이 구절을 읽으면서 난 다시한번 다짐해 본다. 아무리 거센 물결의 소용돌이에 우리삶이 휘말리더라도 우리만이 간직한 지금의 눈망울만은 끝까지 지켜야 한다고...난 10년후의 스톰이 타인처럼 낯설어져 내자신에 대한 마지막 몸부림인냥 그에게 입맞춤을 하고 싶지않다. 생각만으로도 너무 슬프지 않은가... 더군다나 빛을 잃은 눈을 가진 여자로 훗날 스톰에게 비추어 진다는건 내 자신을 송두리째 잃어버리는 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