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월6일

스톰과 나도 아주 가끔가다가 또 어쩔땐 줄줄이 비엔나 쏘세지 처럼 연속적으로 다투고 토라질때가 있다. 싸울때는 꽤 심각했는데 다시 화해하고 나서 뒷풀이할때는 서로 웃느냐고 배꼽을 잡기도 한다. 싸우는 도중에 서로 궁금해도 못 물어 봤던 일들, 말해주고 싶었는데 끝까지 버팅기느냐 꺼내지 못한 이야기들을 스톰과 나는 서로 먼저 말하고 싶어서 지지배배 지지배배 참새떼처럼 한참을 떠들곤 한다.

특히 랄라를 키우면서 서로에 대한 필요성과 의존도가 증폭한 이후로는 길어야 2시간 정도 나 혼자 토라져 있다가 스톰의 전화공세 내지는 몸을 던진 원맨쇼로 웃고 풀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 같다. 그렇다고 스톰이 허허 맘 좋기만 한 면이 있는것도 아니다. 내가 붙여준 스톰의 별명이 삐돌이인걸 보면 대략 짐작이 되겠지만 스톰은 퇴근후에 내가 집안일 한다는 이유로 혹은 책을 읽거나 피아노를 치면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스톰은 나와 최대한의 시간을 함께 보내지 못할때 서운함의 일면으로 삐돌이가 되는 듯 싶다. 아니면 삐돌이 인 척 하는지도 모르겠다. 더 재미있는건 스톰이 근래 문주란씨의 "남자는 여자를 귀찮게 해" 라는 곡을 그의 18번 메들리 리스트에 추가 시겼다는 거다. 이곡을 부를때마다 "그대를 위한 노래야..." 하고 열창하는 모습을 보면 나도 스톰을 더이상 미워할수가 없다.

우리는 싸우고 나서 두손 꼭 잡고 다짐한다. "우리 정말 싸우지 말자... 인생은 그렇게 길지 않아... 함께 있는 동안이라도 웃으면서 사랑하면서 살자..." 하지만 그런 결연한 우리의 자세도 특히 나의 자세는 아주 자그마한 일로 금새 균열을 일으킨다. 예를 들면 이번 연말에 랄라가 망가트린 가습기에대한 미련을 그만 버리고 새로운 가습기를 장만했는데, 바로 이 가습기 때문에 나 혼자 열을 올리고 말았다. 여행중에 애틀란타에 있는 쿠쿠전자 가습기 매장에서 내가 스톰한데 이걸 장만하자고 일러둔 모델이 있었는데 내가 다른 분들과 외출한 사이에 스톰이 랄라를 데리고 가서 덜커덕 새 가습기를 사가지고 온 것이다. 스톰한데 그당시는 어찌나 대견하고 고맙던지 "어머... 오빠! 너무 고마워..." 했었는데, 우리집에 와서 풀러놓고 보니 오잉! 내가 말한 모델이 아닌 것이었다. 가격을 물어보니 똑같은데, 스톰은 물이 7리터가 들어가는 가습기를 마다하고 5리터 밖에 안들어가는 가습기를 같은 가격을 주고 사가지고 온 것이다. 딩!딩!딩!

그래서 오후내내 쫑알쫑알 스톰을 쪼았더니만, 스톰이 나중에 한마디 던졌다.
"7리터와 5리터의 가습기 물통 크기가 그대한테는 정말 이렇게 까지 중요한 이슈야?"
"당근이지!(약 5분간 나의 의기 당당한 가습기 판매사원 수준의 설명일 이어짐)"
근데 실컷 이야기 하다가 나중에 내린 결론은,
"오빠는 여자의 마음을 정말 몰라! 아휴 답답해!" 였고, 스톰은 '흠... 가습기와 여자의 마음이라...' 라고 혼자 되뇌이며 씻으러 들어갔다. 난 그사이 위의 그림을 바탕화면으로 깔아놓고 스톰을 기다렸다. 스톰 얼굴이 보이자 마자,
"아까 우리 하던 얘기 말이야. 오빠는 내가 말하면 이해를 잘 못하는거 같으니까, 컴퓨터 가서 바탕화면 보고와!"
그 뒤 스톰은 정말로 잠잠해 졌다. 잠시후 스톰이 나를 보며,
"와... 이건 그야말로 철학인데..." 하면서 웃어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