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7월6일

랄라의 신나는 여름방학이 7월부터 시작 되었다. 난 어릴적 방학이 되면 시골에 계신 할머니 할아버지를 보러간다는 친구들이 가장 부러웠다. 매일마다 시커먼 아스팔트 길을 걸어 잿빛 아파트 숲속에 둘러싸여 있는 학교를 가야했던 나에게 시원한 바람과, 끝없이 펼쳐진 푸른 들판이 있고, 이가 시릴만큼 차가운 시냇물에 둥그런 수박하나를 담가놓고 물장난을 칠수있는 시골집이 있는 친구들의 여름방학은 상상만으로도 더위를 잊을수 있었다.

엄마는 그런 나를 위해 꼬박꼬박 방학마다 다양한 캠프에 보내주셨지만 지금와서 솔직히 고백하자면 내가 정말 그리웠던건 고만고만한 또래아이들끼리 어울려 텐트를 치고 극기훈련이나 장기자랑을 하고 캠프화이어나 촛불의식이라는 이름아래 마치 3박4일 동안 자신이 훌쩍 커버린듯한 집단착각에 빠지도록 몰고가는 그런 인위적 시골체험 관광단으로써의 추억이 아니었다.

나는 들꽃들이 시원스레 바람결에 따라 일렁이는 모습들이 보고 싶었고, 대청 마루에 나와 할머니 무릎을 베고 누워 비스듬히 펼쳐진 시골집 마당과 하늘과 이웃집 지붕들을 보고싶었다. 새파란 오이를 할머니 치마에 쓰윽쓰윽 문지른뒤 한입 베어먹고 싶었고, 하얀 샌달을 신고 치마를 팬티속에 모두 말아 넣고는 조심스레 시냇물을 건너고 싶었다. 밤이오는 냄새, 아침이 오는 냄새, 한 낮이면 이글이글 땅이 타오르는 흙냄새를 맡으면서 그렇게 맘 놓고 푸욱 쉬다가, 놀다가, 먹다가, 자다가, 신나게 웃을수 있는 시골집이 그리웠던 것이다.

우리 랄라도 그런 여름방학을 그리워 할수 있는 한국적 정서를 가진 아이로 커주었으면 한다. 노을이라는 말을 들으면 랄라의 머릿속에는 구수한 밥짓는 냄새와 시골집의 굴뚝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기 시작하고, 장마라는 말을 들으면 쏴-하고 쏟아지는 우리나라의 장대비와 수박과 참외위로 우두둑 떨어지는 굵고 힘찬 빗방울을 떠올려주기를 바란다.

아이 엄마가 된 지금도 여름방학은 내게 잔잔한 설레임으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