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0월에 진짜 큰마음 먹고 구입해서 10개월 동안 내가 아끼고 아끼던 보물을 우리 랄라가 단 한방에 K.O 시킨것이다. 오마이 갓!!! 이말은 진짜 이럴때 쓰라고 있는 말일꺼다. 그 날밤 랄라가 꼬물꼬물 손장난을 치며 내 디카에 눈독을 드릴때 부터 인정사정 볼거없이 그냥 손에서 뺏었어야 했는데.... 랄라가 막간을 이용해 카메라 줄을 낚아채 이층으로 후다닥 뛰어 올라갈 때까지만 해도 나는 열심히 뛰어 뒤쫒았는데... 막상 우리 침실에서 스톰과 함께 치~즈~ 를 연발하며 재미있게 사진 찍기 놀이를 하는 랄라의 모습에 귀엽다는 생각이 앞서 그만 분별력을 잃었던 내죄가 크다.

난 처음에 스톰이 랄라가 디카를 망가트렸다고 했을때도 농담하는 줄 알았다. 너무나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기도 하며, 또 아무리 그래도 맨 바닥도 아닌 카펫에 떨어트렸다고 해 봤자 별 일 있었겠나 싶어서였다. 근데 여유있던 내 얼굴도 디카 상태를 확인해 갈수록 점점 이그러졌다. 사진기의 전원 스위치가 먹통이고, 무엇보다 카메라 렌즈가 앞으로 나오지를 못해 꺼억 꺼억 소리만 내고, LCD 모니터는 줄무늬 초록색이 보였다 안보였다 하는것이 아무래도 복구 불가능이라는 직감이 순간 머리를 솨아~악 하고 스치는 것이였다.

너무너무 화가 난 나는 랄라 장난감도 아닌데 왜 엄마 카메라 가지고 놀다가 망가 트렸냐고 혼을 낸 뒤 이유를 물어보니 랄라는 그냥 한마디만 쑥 내 뱉을뿐!

"엄마, 디카 망가!"

날 더 열받게 한건 다름아닌 스톰이다. 아니 분명히 5분전까지만 해도 랄라랑 같이 놀고 있었으면서 아이가 디카를 망가트릴때 뭐 하고 있었냐고 물으니

"아니... 난 그냥 침대에 누워 있었지... 그래서 어떻게 된건지 잘 모르겠어..."

"으악---- 정말 오마이 갓!!! 이다. 오마이 갓!!!"

고장난 디카를 보고 있자니 눈물이 나면서 속이 답답해 지는것이 여기서 이렇게 스톰이랑 랄라한데 화낸다고 해결될 일이 뭐가 있겠나 싶은게 어디가서 머리좀 식히고 오자 싶어 일단 자동차 키를 집어들고 나왔다. 근처 서점에 들어가자 마자 Starbucks 에서 Caramel Macchiato 를 한잔 시켜 마시며 책을 둘러보았다. 이상황에도 엄마라는 꼬리표는 떼어지지 않는지 내 발길이 제일먼저 머무르는 곳은 다름아닌 랄라가 좋아하는 아동도서 코너였다. 그렇게 이곳 저곳 구경하다 Pablo Neruda의 시집 "The Captain's Verses" 한 권과 Klimt의 작은 화보집 한 권을 구입해서 돌아왔다. 집에 와보니 랄라와 스톰은 이미 깊은 잠에 빠져있었고,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또 한쪽 가슴이 쏴~ 한것이 아려오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꿀꿀한 기분을 날려보내려 욕실에 있는 연분홍 메니큐어를 들고 소파에 앉았다. 그리고는 스탠드 불빛 아래서 처량맞게 손톰에 메니큐어 칠을 하고 있는데 문득 옛날 어릴적 생각이 나는게 아닌가...

옛날에 방에서 덤벙거리다가 할머니께서 머리맡에 벗어두신 새 안경을 밟아버려 고칠수 없을 만큼 휘게 한 적이 있다. 어릴적 백내장을 앓으셨던 할머니께서는 지금까지도 그 후유증으로 시력이 상당히 좋지 않으셔서 할머니의 안경은 곧 할머니의 눈이나 다름없었는데... 할머니께서는 조심성 없이 왜 그리도 덤벙거리냐며 꾸중은 하셨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니 어떻하겠냐고 더이상 큰 혼은 안내셨던걸로 기억한다. 하지만 지금도 기억이 생생한건 새로 장만하신지 얼마 안되 망가져 버린 그 안경이 안타까우신지 손위에 올려놓으시고 한참을 만지시다 한숨을 쉬시던 할머니의 뒷모습이다.

내가 망가트렸던 할머니의 안경은 생활하시는데 없어서는 안될 할머니의 필수품이였지만, 랄라가 망가트린 나의 디카는 사치품에 지나지 않는다.

디카 망가 사건 하루 뒤...
아침 출근길에 스톰과 랄라는 내가 샤워하는 동안 아래와 같은 전화 메시지를 남겨놓았더랬다.

스톰: "랄라야 얘기해"
랄라: "엄마"
스톰: "미안합니다 그래"
랄라: "먄합니다."
스톰: "미안해요. 용서해 주세요"
랄라: "먄해요."
스톰: "엄마 사랑해요"

랄라: "샹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