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9월1일

유난히 바빴던 올 여름...

이사와 손님맞이로 분주했던 여름이 이렇게 저무나보다 싶으면서도 아쉬움 보다는 9월을 맞이하는 기쁨과 내가 가장 사랑하는 계절인 가을의 도래가 공식화 되었음에 설레임이 앞서곤 한다. 더불어 진짜 신나는 일은 내일 모레면 엄마가 오신다는 거다.

결혼 후 랄라가 태어나기 전까지는 스톰의 한국출장은 물론 해외 출장까지 한 번도 빠짐없이 따라다녔기에 한국을 두 달에 한번꼴은 나갈수 있었던 나는 엄마한테 농담삼아 "아니 엄마 딸 미국에 시집보낸거 맞아? 무슨 부산에 사는 딸 처럼 한 달 건너 한 번씩 친정에 오구 그래" 하고 웃기도 했었는데, 내가 만삭이 되고 랄라가 태어나자 한국 나들이는 더이상 비행기 타면 휭~ 하니 날라갈수 있는 코스가 아니게 되어버렸다. 그래도 딸 하나 바라보고 사는 우리 엄마는 쌈지돈을 보태서라도 일년에 한번씩은 내가 한국땅을 밟을수 있게 우리 랄라몫까지 비행기표도 끊어주고, 엄마 역시 딸 보고 싶다는 마음이 밀려드면 회사일도 뒷전으로 한채 과감히 표를 끊고 당장이라도 비행기에 오르는 슈퍼맘이다.

난 생각해 보면 결혼 후 엄마한데 맨날 우리 시부모님 자랑만 신나게 한거 같다. 엄마와는 달리 전업주부신 어머님의 꼼꼼한 살림솜씨와 구수한 음식솜씨는 커리어 우먼의 이미지가 강한 우리 엄마와 상반되 보여 내게는 좀 더 특별해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오죽하면 엄마가 그렇게 시댁이 좋으면 아예 시부모님 딸 하면 될꺼 아니냐고 엉뚱한 소리까지 했을까... 엄마는 어쩌면 시집간 딸 한데서 시집가보니 엄마의 소중함을 알았다거나 아님 시부모님과 있을때보다 친정에 오니 너무나 좋다거나 그런 뉘앙스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었던건 아닐까? 난 엄마가 들어서 즐거운 이야기, 엄마 걱정 안 끼쳐드릴 이야기를 해 드리고 싶어서 늘 좋은 이야기를 더 많이 했던것 같은데, 그러다보니 막상 내 맘속에 가득한 엄마에 대한 고마움, 그리움, 아쉬움, 미안함 등에 대해서는 표현하지 못한듯 싶다.

가장 가까운 이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것 만큼 어리석은 일이 없다고 수없이 책에서 읽었으면서도 남한데는 좋은소리 듣고싶어 착하게 착하게 살면서도 결국 나를 낳아준 엄마, 키워준 엄마, 그리고 날 떠나 보내고 가슴 아파해온 엄마한데는 맨날 '우리 엄마니까 말 안해도 다 알꺼야' 라는 식의 잘못된 사고를 가지고 있었던 나 임이 분명하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이제 결혼 5년차가 되면서 조금씩 나의 과오를 뉘우치고 있으니... 나의 부족함으로 엄마 마음에 상처를 남긴 잃어버린 5년이란 세월은 어쩌란 말인가...

사실 세상 어느 구석에 내 엄마 만큼 편한 사람이 있겠는가... 등 비비고 누워 두런두런 이야기 할수 있는 엄마가 건강히 내 곁에 살아 계시다는 것 만으로도 너무나 감사한 일이라는 걸 이제서야 깨닫는다. 아니 예전에도 머릿속으로는 다 알고 있었던 것이지만, 한번도 마음으로 뼈저리게 느껴본적은 없었던 듯 싶다. 왜냐면 엄마는 산소같은 존재였으니까... 내가 손 뻗히면 닿는 곳에서 늘 그렇게 나만을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안다. 엄마가 얼마나 소중한 내 인생의 버팀목인가를... 엄마는 내일모레도 나를 보자마자 작년과 같은 첫마디로 인사를 대신할 것임이 분명하다. "왜 또 이렇게 말라 비틀어 졌니?" 공항에서 내 쪼그라진 얼굴에 벌건 얼굴로 흥분해서 소리치면서도 둘이 식탁에 마주 앉으면 곱게 키운 내딸 혼자서 애 키우며 고생하느냐 이모양 됬다고 가슴아파 하는 엄마. 내 입으로 뭐 하나라도 더 들어갈때마다 신나라 좋아라 하며 엉덩이 퉁퉁 두들겨 주는 사람이 엄마 빼고 이 지구상에 몇이나 될까?

나는 오늘밤이 가장 설렌다. 내일도 아닌 내일 모레라는 어감이 주는 여유가 아직 있기에... 내일은 이미 엄마를 만나게 된다는 설레임이 긴장과 초조로 뒤바껴 잠못이루는 밤이 될 것이고, 모레 당일은 눈 뜨자 마자 조바심으로 몇 번 씩 비행기 도착 시간만 확인하며 보낼 것이기에, 난 이렇게 스톰도 랄라도 모두 꿈나라로 간 조용한 이밤에 혼자 머릿속 가득 울 엄마를 그려볼수 있어서 너무나 좋다. 하지만 엄마는 나보다 더 둥둥 들뜬 마음으로 내일을 맞이하겠지? 엄마의 사랑은 엄마의 그리움은 늘 나보다 한 발자욱씩 앞서가니까... 난 엄마를 당해낼수가 없다. 하지만 난 그래서 참 행복한 딸이라는 것을 뒤 늦은 지금에서야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