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9월13일

이야기 하나:

햇살이 따사롭게 비추는 9월 어느날 오후. 자그마한 체구의 엄마가 발코니 의자에 앉아 두다리를 앞으로 모아 무릎을 쫑긋 세우고는 나무 거울 하나를 올려놓고 열심히 흰 머리를 뽑고 있다. 엄마 머리 위로 파아란 하늘을 가르며 비행기가 휘익- 지나가고... 사과나무에서는 사과가 소리도 없이 붉게 익어가고 있다. 얼마 동안 엄마는 저 자리에 저렇게 앉아 계셨을까? 도톰한 엄마 이마에 송글송글 땀방울이 맺힌걸 보면 제법 시간이 흐른듯 싶다. 양미간을 모으고 몹시 심각한 표정으로 머리를 양 옆으로 돌려가며 열심히 흰머리를 뽑고 있는 엄마. 햇살 좋은날 뭐하고 계시냐며 다가서서 엄마의 긴 머리를 헤쳐보니 정수리에 촘촘히 자리잡은 흰머리가 눈 앞에 가득하다. 아이낳고 아둥바둥 사는게 힘들다고 맨날 하소연만 늘어놓는 사이에 곱디 고운 울엄마 머리가 하얗게 세어가고 있는걸 몰랐던 내 자신이 너무도 원망스러운 9월 어느날 오후...

이야기 두울:

랄라 청바지를 빨아 탁탁 털어 뒷뜰 나무 난간에 걸쳐놓으시다 엄마가
"아이고 이것봐라!" 하신다.
"뭐야 엄마?"
"랄라가 깻잎을 이렇게 따서 자기 바지 주머니에 꼭꼭 숨겨놨쟎니..."
순간 엄마 얼굴에도 내 얼굴에도 순박한 미소가 번진다.
며칠 전 랄라가 벗어놓은 모자속에서는 시들은 민들레가 한움큼 떨어지더니.... 여기저기서 풀잎과 꽃과 돌과 채소를 모아다가 혼자만이 알고 있는 장소에 조금씩 쌓아놓기 시작하는 랄라가 더없이 사랑스럽다. 그렇게 수수한 모습으로 계속 성장해 주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