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9월19일

얼마전 랄라와 함께 오랫만에 놀이터에 갔을때 랄라는 모래밭에 들어서자 마자 신발을 벗었다. 그리고는 엄마도 신발을 꼭 벗어야 한다기에 나도 덩달아 신발을 훌러덩 벗어놓고는 한참을 놀이터에서 놀다 집으로 돌아왔다. 정리정돈을 좋아하는 랄라는 그 날도 이렇게 내 신발까지 가지런히 모래밭위에 정리해 놓고는 이쪽 미끄럼틀로 저쪽 미끄럼틀로 열심히 뛰어다녔다. 그 날 랄라가 정리해 놓은 모래위의 신발이 너무 예뻐서 찍어놓은 사진인데 집에와서 보니 작년 가을즈음 해서 우연히 인터넷에서 '조춘' 씨의 "엄마의 신발" 이라는 그림을 처음 접했을때와 그 느낌이 너무도 비슷해 잠시 생각에 잠겼다.

신발을 벗는다는것.
뭔가 조금더 자유로워 지는 듯한 느낌.

랄라와 함께 촉촉한 모래위를 마구 뛰어놀수 있는 튼튼한 다리가 있다는 것 만으로도 나는 감사하다. 이충기 시인의 말처럼 발가락을 꼼지락 거릴수 있고, 그냥 일어서서 어디론가 훌쩍 떠날수 있는 건강한 다리가 있다는 것은 참으로 감사해야 할 일이다. 우리의 일상속에는 친숙함에 묻혀 더이상 축복을 축복으로 여기지 못하고 당연함으로 받아들여지는 것들이 가득하다.

'어느새 발이 이만큼 자랐구나' 하면서 새싹처럼 쑥쑥 커가는 아이를 떠올리며 새 신발을 고를수 있는 기쁨을 이 세상의 모든 부모들이 가지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벗어놓은 신발속에서 웃음보다는 슬픔과 아픔과 눈물을 먼저 떠올리는 이 들이 우리 주위에는 수없이 많을 것이다. 만약 내 아이가 또는 조카나 친구의 아이가 다리의 선천적 혹는 후천적 장애로 인해 신발이 있어도 쉽게 신을수 없고, 두 발이 있어도 혼자 걸을수 없고, 뛰어놀수 없다면 그 모습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은 얼마나 미어질까...

어르신들이 아이를 가지면 열 손가락 열 발가락 있는것 만으로도 감사해야 한다고 하시던 말씀이 결코 과장된 표현이 아니였음을 나는 랄라를 품에 안아보고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잘 걷고, 잘 뛰고, 잘 노는 우리 랄라의 오동통한 종아리에 자리잡은 자그마한 알통을 보면서 난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의 소중함과 귀중함을 동시에 느끼곤 한다. 그 작은 두 발에 힘을 주어 힘껏 까치발을 하고는 탁자위의 물건을 집을때나 펄쩍 하고 힘차게 위로 뛰어오를때 눈에 들어오는 랄라의 꼬마알통이 나에게는 랄라의 건강함의 징표처럼 느껴져 매일매일 감사하지 아니할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