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월 11일

얼마 전부터 매너리즘에 빠져 허덕이던 나. 나날이 늘어나는 스톰을 향한 짜증은 이미 타협할 수 있는 수위를 넘었고, 그런 내 모습이 싫어 몸부림치면서도 자꾸만 가라앉는 무기력한 나를 발견한다.

스톰 또한 너무도 잦은 해외 출장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시차를 극복할 여유도 없이 휴식은 막론하고 정신을 챙길 틈도 없어 보인다. 지난 몇 년간 스톰은 이 비행기에서 저 비행기로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옮겨 다니는 일이 반복되는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그런 스톰이 출장을 마치고 집에 온 지 이틀째인 오늘 힘든 몸을 일으켜 다시 아침을 여는 모습을 침대에 누워 차분히 지켜본다. 욕실에서 윙~ 하는 전동칫솔 소리가 들려오고 곧이어 샤워부스의 물소리가 쏴-하고 머리 위로 쏟아진다. 그 뒤를 이어 랄라가 "아빠! 아빠!" 하고 스톰을 부지런히 따라다니며 뭐라고 쫑알쫑알 쉴 새 없이 말하는 목소리가 온 집안을 가득 메우는 우리들의 아침.

이렇게 또 하루가 시작되고,
랄라를 유아원에 보낼 준비를 하고,
스톰과 랄라가 인사를 하고 집을 나선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맛있는 커피 한 잔을 떠올리고 있을 무렵,
현관에서 다시 인기척이 들리고,
애써 나에게 미소 짓는 스톰이 바로 내 앞에 서있다.

스톰의 양손에 들린 커피를 보자,
그냥 울컥 눈물이 나려고 한다.
'아... 우리 부부였지.'
'5년 동안 함께 살아온 부부구나.'
스톰이 내 손에 따뜻한 커피 한 잔을 쥐어 주더니,

재킷 속에서 장미꽃 한 송이를 꺼내 손에 쥐어준다. 

"미안해. 내가 요즈음 너무너무 바빴어. 결혼 후, 오로지 앞만 보고 뛰어온 것 같아. 내가 사랑하는 그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대를 내 옆에 두고, 내가 손 뻗으면 안아줄 수 있는 바로 코 앞에 그대를 두고도 사랑하는 마음만큼 자주 안아주지 못했고, 꽃 선물도 해준지가 너무 오래된 것 같아. 나도 요즘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정말 힘들어. 그대의 위로가 필요해. 그대 또한 몸이 약하고 아이 키우면서 반복되는 단순한 일상 속에서 너무나 힘들었을 거라는 생각을 해봤어. 난 그대를 사랑해. 그대 없이는 살 수가 없어. 내가 생을 마감하는 날 나는 그대가 내 곁에 있어줬으면 좋겠어. 나 지금 또 한 번 그대에게 프러포즈하는 거야. 그리고 오늘은 1월 11일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