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7월 12일

이제 크레파스 보다는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기를 선호하는 랄라.

며칠 전 부터 팔렛트를 사용하게 했더니 서른 한 칸이나 되는 곳이 온통 여러색의 물감으로 범벅이 되어 딱딱히 굳어져 있었다. 어젯밤 부터 씻으려고 뜨거운 물에 넣고 철수세미로 문질러 닦아보기도 하고 퐁퐁도 묻혀보기도 하고 물을 세게 틀어보기도 하다가 잠들기 전 따뜻한 물을 받은 뒤 그 안에 담구어 놨더랬다. 그리고 오늘 아침 랄라를 유아원에 데려다 주고 돌아와 들여다봤더니 정말 놀랍게도 그 단단히 눌어붙어있던 물감들이 얌전히 물위로 떠있는 것이다. 팔렛트를 살짝 들어올려 좌우로 살랑살랑 흔들면서 물에서 빼냈더니, 아무런 노력없이도 팔렛트는 끈적거리던 물감들을 말끔히 떨구고 감쪽같이 본연의 흰색으로 돌아와 있었다.

살면 살수록 난 어른들 말씀중에는 하나도 버릴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어릴적에는 잔소리로만 느껴지던 할머니와 엄마의 작은 가르침들이 오늘을 사는 나에게 얼마나 보석같이 값진 명언들이며 철학이였는가를 뒤늦게 깨닫고 뉘우치며 살아가고 있다. 나는 계획한 일들을 제때 마치지 못하면 늘 발을 동동 구르며 스스로를 재촉하고 볶아데는 나쁜 버릇이 있다. 그럴때 마다 할머니께서는 "수미야. 안되는거 자꾸 붙들고 머리 아파하지 말고 잠시 쉬었다 내일 다시 해라" 하시며 한 템포 늦춰 사는 법을 강조하시곤 했는데... 오늘도 하룻밤만 물에 담가 놓으면 이리도 쉽게 스스로 떨어져 나올 물감들을 어제는 왜그리도 당장 못 떼어내서 안달을 했었나 싶다. 그러고보니 어젯밤 잠들기 전에 읽은 책에 적혔던 구절이 또 한번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다.

"다친 달팽이를 보거든 돕지 말라. 그 스스로 궁지에서 벗어날 것이다. 당신의 도움은 그를 상심하게 할 것이다. 제자리를 떠난 별을 보거든 별에게 충고하고 싶더라도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라. 빨리 흐르라고 강물을 떠밀지 말라. 강물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장 주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