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0월 4일

우리집은 T.V 시청을 안하는 아마 몇 안되는 집 중에 하나일꺼다.

한국처럼 시청료를 납부하지 않아서 끊긴건 아니고, 작년부터 랄라를 위해서 공중파/케이블 모두 연결을 끊고, 오로지 도서실에서 빌려오는 아이들용 DVD 만 보여주도록 하고 있다. 처음에는 좀 무료하고 적응하는데 시간이 필요했지만, 다행히 나랑 랄라는 책 읽는걸 좋아해서 조금 쉽게 적응했고, 스포츠나 다큐멘터리 체널을 단골로 시청해 왔던 스톰에게는 좀 더 긴 적응 기간이 필요했던걸로 기억한다. 하지만 그 덕분에 얻은것도 이루 말할수 없이 많다.

저녁시간이 수동적인 T.V 시청에 얽매이지 않게되면서 부터는 매우 다양한 방법으로  Family Time 을 즐기게 되었기 때문이다.  주로 우리는 하루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 하거나, 퍼즐을 하거나, 랄라랑 그림을 그리거나, 산책을 하거나, 놀이터에서 놀거나, 수영을 하거나, 책을 읽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음악을 들으면서 드라이브를 하거나, 쇼핑을 하면서 주중의 저녁시간을 보낸다. 또 가끔은 가족끼리 보는 영화를 빌려와서 시청하기도 하고, 스톰과 둘이서 인터넷으로 한국 영화나 역사/정치 관련 다큐멘타리를 볼때도 있다.

어젯밤 같은 경우도 랄라가 혼자 조용히 글씨공부를 하고있기에, 스톰과 같이 우리가 좋아하는 한국 역사스페셜 체널을 인터넷으로 보고있었는데, 하필이면 랄라가 우리방에 들어와 스톰 무릎에 앉자마자 명성황후가 시해된 뒤 화형에 쳐해지는 장면이 바로 나온것이다. 아직 아이가 어리기 때문에 가끔 영화속에서 나오는 적절치 않은 장면들이 나오면 스톰이나 내가 랄라의 시선을 딴 곳으로 이끄는데, 어젯밤은 너무 갑자기 모든일이 일어나서 랄라도 고스란히 그 장면을 모두 보고 말았다.

"엄마. 아줌마가 왜 앗뜨거 Fire 했어요?"

"소방차도 올꺼예요? 삐보삐보 차 타고 병원 갈꺼예요?"

랄라는 정말 비슷한 질문을 꽤 여러번 했었는데, 우리가 인터넷을 끄고 난 뒤,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하자, 위에 그림을 그려서 가지고 왔다. 정말 소름끼치게 무서웠던건, 랄라의 그림 설명이다. 윗부분은 랄라가 늘 연습하는 숫자와 알파벳인데, 검은 싸인펜으로 그린 숫자랑 이름 밑에 얼핏보면 낙서처럼 보이는 부분이 있을것이다.

랄라한데 "이건 뭐 잘못써서 지운거니?" 하고 물어보니, 랄라가 하는 말이 "엄마. 이건 아줌마가 Stick 이랑 같이 Fire 하고 있는거예요."

시각적 자극이 다른 어떤 감각의 자극보다도 가장 빨리 뇌에 침투해서 반응을 보이며 또 가장 오랜 기억을 저장한다고 하는데, 난 이 그림 한 장이 참 많은걸 이야기 한다고 본다. 잠시 본 장면에서 만 네 살짜리 어린이가 이런 이미지를 그릴수 있다면, 지금 우리 미디어에서 쏟아져 나오는 셀수없을 만큼의 다량의 폭력물과 음란물이 아이들의 눈에 어떻게 비추어지며, 뇌에 저장되며, 또 어떤식으로 생활에 반영될지는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