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0월 8일 

추석날 비록 손수 송편을 빚어먹지는 못해도 만두나마 랄라랑 스톰에게 주고 싶은 마음에 올해로 3년째 추석에는 집에서 나 홀로 만두를 빚고 있다. 솔직히 이 만두라는 게 빚는 거는 일이 아닌데 문제는 만두소 만들기다. 손놀림이 빠르고 힘도 있으신 분들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는 가장 공이 많이 들고 시간도 두 시간 정도 소요되는 과정이다. 혼자서 버섯, 부추, 실파, 마늘, 숙주나물을 다듬고 당면을 미리 삶아 놓은 뒤에 채 썰어 다지고 또 다지다 보면 칼 질을 하는 내 손이 휘청거리기까지 한다. 마지막으로 김치, 두부, 숙주나물의 물기를 베보자기로 꼭꼭 짜는 과정은 그야말로 마지막 남은 힘을 모아 아등바등 온몸으로 수분을 빼내야 한다. 

부추만두와 김치만두용의 각기 다른 만두소가 담긴 커다란 유리그릇 두 개를 앞에 놓고 만두를 빚고 있자니 갑자기 울컥 눈물이 나려고 한다. 다름이 아니라 철없던 나의 지난 세월이 생각나서이다. 대학생 시절 나는 여름방학이 시작하자마자 매년 한국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우리 가족이 있었고, 무엇보다 내가 사랑하는 할머니가 계셨다. 집에 도착하면 할머니께서는 "우리 강아지 뭐 해줄까?" 하고 제일 먼저 물으셨는데, 난 정말 앞뒤 생각 안 하고 먹고 싶은 건 다 늘어놨다. 우리 할머니표 김치볶음밥이나 계란말이부터 시작해 도토리묵, 식혜, 비빔국수, 김치만두 까지 정말 단숨에 먹고 싶은 건 다 말씀드리곤 했다. 

한국에 머무르는 동안, 난 매일 아침이면 너무 쉽게 먹고 싶은 그날의 메뉴를 말하고 외출하기에 바빴다. 그때는 친구들을 만나 함께 보내는 시간이 제일 즐거웠다. 그나마 여유 시간이 생기면 가족과 함께 보내기보다는 연극이니, 콘서트니, 전시회니, 쇼핑이니 하며 밖으로 쏘다니느냐, 지긋이 집에 엉덩이 붙이고 있었던 날은 많지 않았다. 외출하기도 귀찮을 만큼 무덥던 여름, 더위에 지쳐 에어컨 바람을 솔솔 맞아가며 집에서 책을 뒤적이고 있을 때, 우리 할머니께서는 부엌에서 종일 커다란 들통 가득 도토리 묵을 쑤고 계셨다. 혹시라도 묵이 튀어서 살이 데기라도 할까 봐 덤벙거리는 손녀딸은 아예 부엌에 들어오지도 못하게 하셨다. 전래 동화에서 등장할 만한 어마어마한 크기의 나무주걱을 손에 쥐고, 송골송골 땀방울 가득한 얼굴로 불 앞에 서서 휘~휘~ 묵이 엉겨 붙지 않아도 쉬지 않고 젓는 일은  젊은 사람이 해도 어깨가 뻐근할 정도의 힘든 일이다. 타국에서 공부하는 손녀가 한국에 있는 동안이나마 좋아하는 음식 뭐 하나라도 더 먹이고 싶으신 마음에 할머니는 그 고생을 몇 번씩이나 하셨다. 

김치만두도 그렇다. 난 사실 추석날 겨우 85개의 만두를 빚고 나서 그 후유증으로 오늘까지 이 틀 동안 약을 먹고 있다. 그런데 우리 할머니는 지금까지 몇 백개의 만두를 나를 위해 빚으셨는지 모른다. 세 자매 중 가장 음식 솜씨가 좋은 큰 이모는 할머니의 조수가 되기도 하고 코치가 되기도 하면서 함께 만두를 빚었다. 내가 좋아하는 김치만두를 맛있게 만들어 주고 싶은 마음에, 두 분은 서로 번갈아가며 한분은 밀대로 만두피를 만들고 또 한분은 열심히 만두를 빚으시고 그렇게 반나절은 보내셨던 것 같다. 그 많은 양의 만두소를 만들기까지 이모랑 할머니랑 얼마나 많은 시간과 정성을 쏟으셨는지 지금에서야 깨닫게 되는 나. 그래서 자꾸 눈물이 난다. 많이 해놨으니 배부르게 천천히 많이 먹으라던 할머니 말씀이 무색할 만큼, 난 겨우 대 여섯 개의 만두를 집어 먹는 게 고작이었다. 그럴 때면 "아나. 하나만 더 먹어봐라! 하나만!" 하며 내 손에 만두를 쥐어 주시던 할머니의 음성에 목이 멘다. 

미국에 살면서 그래도 추석에 내 딸 내 남편 먹이려고 이렇게 용쓰는 나를 우리 할머니께서는 몹시 대견스러워하시지만, 막상 할머니께서는 아직 단 한 번도 내가 만든 만두 하나 잡숴 보시지 못하셨다. 따끈하게 찐만두를 할머니 입에 호~호~ 불어넣어 드리고 싶은데, 할머니께서는 저 멀리 한국에 계신다. 오늘도 할머니는 전화를 드렸더니, "추석이라 네가 좋아하는 음식이 냉장고 가득한데, 뭐 하나 먹으려 해도 네가 눈에 밟히는구나. 멀리서 애 데리고 혼자 살림하랴, 공부하랴 얼마나 힘들까 하는 생각에 이 할미가 맘이 그렇다. 그래도 항상 잘 챙겨 먹어야 된다. 아휴... 여기 지금 네가 좋아하는 밤이며 대추며 떡이며 얼마나 많은데, 이거 주지도 못하고 할미 혼자 먹기도 맘이 안 좋아." 하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살면서 누군가의 진심을 뒤늦게 헤아리거나 그/그녀의 살뜰한 마음 씀씀이에 새삼스레 감동받는 경험을 한다. 주로 그 누군가는 가까운 가족 또는 오랜 시간을 함께한 친구일 경우가 많다. 고마움을 직접 표현할 기회를 놓쳐버리고 후회하기 전에, 추석날 전화로나마 할머니의 사랑과 보살핌에 진심으로 감사 인사를 드릴 수 있어서 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2006년 10월 8일 

추석날 비록 손수 송편을 빚어먹지는 못해도 만두나마 랄라랑 스톰에게 주고 싶은 마음에 올해로 3년째 추석에는 집에서 나 홀로 만두를 빚고 있다. 솔직히 이 만두라는 게 빚는 거는 일이 아닌데 문제는 만두소 만들기다. 손놀림이 빠르고 힘도 있으신 분들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는 가장 공이 많이 들고 시간도 두 시간 정도 소요되는 과정이다. 혼자서 버섯, 부추, 실파, 마늘, 숙주나물을 다듬고 당면을 미리 삶아 놓은 뒤에 채 썰어 다지고 또 다지다 보면 칼 질을 하는 내 손이 휘청거리기까지 한다. 마지막으로 김치, 두부, 숙주나물의 물기를 베보자기로 꼭꼭 짜는 과정은 그야말로 마지막 남은 힘을 모아 아등바등 온몸으로 수분을 빼내야 한다. 

부추만두와 김치만두용의 각기 다른 만두소가 담긴 커다란 유리그릇 두 개를 앞에 놓고 만두를 빚고 있자니 갑자기 울컥 눈물이 나려고 한다. 다름이 아니라 철없던 나의 지난 세월이 생각나서이다. 대학생 시절 나는 여름방학이 시작하자마자 매년 한국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우리 가족이 있었고, 무엇보다 내가 사랑하는 할머니가 계셨다. 집에 도착하면 할머니께서는 "우리 강아지 뭐 해줄까?" 하고 제일 먼저 물으셨는데, 난 정말 앞뒤 생각 안 하고 먹고 싶은 건 다 늘어놨다. 우리 할머니표 김치볶음밥이나 계란말이부터 시작해 도토리묵, 식혜, 비빔국수, 김치만두 까지 정말 단숨에 먹고 싶은 건 다 말씀드리곤 했다. 

한국에 머무르는 동안, 난 매일 아침이면 너무 쉽게 먹고 싶은 그날의 메뉴를 말하고 외출하기에 바빴다. 그때는 친구들을 만나 함께 보내는 시간이 제일 즐거웠다. 그나마 여유 시간이 생기면 가족과 함께 보내기보다는 연극이니, 콘서트니, 전시회니, 쇼핑이니 하며 밖으로 쏘다니느냐, 지긋이 집에 엉덩이 붙이고 있었던 날은 많지 않았다. 외출하기도 귀찮을 만큼 무덥던 여름, 더위에 지쳐 에어컨 바람을 솔솔 맞아가며 집에서 책을 뒤적이고 있을 때, 우리 할머니께서는 부엌에서 종일 커다란 들통 가득 도토리 묵을 쑤고 계셨다. 혹시라도 묵이 튀어서 살이 데기라도 할까 봐 덤벙거리는 손녀딸은 아예 부엌에 들어오지도 못하게 하셨다. 전래 동화에서 등장할 만한 어마어마한 크기의 나무주걱을 손에 쥐고, 송골송골 땀방울 가득한 얼굴로 불 앞에 서서 휘~휘~ 묵이 엉겨 붙지 않아도 쉬지 않고 젓는 일은  젊은 사람이 해도 어깨가 뻐근할 정도의 힘든 일이다. 타국에서 공부하는 손녀가 한국에 있는 동안이나마 좋아하는 음식 뭐 하나라도 더 먹이고 싶으신 마음에 할머니는 그 고생을 몇 번씩이나 하셨다. 

김치만두도 그렇다. 난 사실 추석날 겨우 85개의 만두를 빚고 나서 그 후유증으로 오늘까지 이 틀 동안 약을 먹고 있다. 그런데 우리 할머니는 지금까지 몇 백개의 만두를 나를 위해 빚으셨는지 모른다. 세 자매 중 가장 음식 솜씨가 좋은 큰 이모는 할머니의 조수가 되기도 하고 코치가 되기도 하면서 함께 만두를 빚었다. 내가 좋아하는 김치만두를 맛있게 만들어 주고 싶은 마음에, 두 분은 서로 번갈아가며 한분은 밀대로 만두피를 만들고 또 한분은 열심히 만두를 빚으시고 그렇게 반나절은 보내셨던 것 같다. 그 많은 양의 만두소를 만들기까지 이모랑 할머니랑 얼마나 많은 시간과 정성을 쏟으셨는지 지금에서야 깨닫게 되는 나. 그래서 자꾸 눈물이 난다. 많이 해놨으니 배부르게 천천히 많이 먹으라던 할머니 말씀이 무색할 만큼, 난 겨우 대 여섯 개의 만두를 집어 먹는 게 고작이었다. 그럴 때면 "아나. 하나만 더 먹어봐라! 하나만!" 하며 내 손에 만두를 쥐어 주시던 할머니의 음성에 목이 멘다. 

미국에 살면서 그래도 추석에 내 딸 내 남편 먹이려고 이렇게 용쓰는 나를 우리 할머니께서는 몹시 대견스러워하시지만, 막상 할머니께서는 아직 단 한 번도 내가 만든 만두 하나 잡숴 보시지 못하셨다. 따끈하게 찐만두를 할머니 입에 호~호~ 불어넣어 드리고 싶은데, 할머니께서는 저 멀리 한국에 계신다. 오늘도 할머니는 전화를 드렸더니, "추석이라 네가 좋아하는 음식이 냉장고 가득한데, 뭐 하나 먹으려 해도 네가 눈에 밟히는구나. 멀리서 애 데리고 혼자 살림하랴, 공부하랴 얼마나 힘들까 하는 생각에 이 할미가 맘이 그렇다. 그래도 항상 잘 챙겨 먹어야 된다. 아휴... 여기 지금 네가 좋아하는 밤이며 대추며 떡이며 얼마나 많은데, 이거 주지도 못하고 할미 혼자 먹기도 맘이 안 좋아." 하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살면서 누군가의 진심을 뒤늦게 헤아리거나 그/그녀의 살뜰한 마음 씀씀이에 새삼스레 감동받는 경험을 한다. 주로 그 누군가는 나의 가까운 가족 또는 오랜 시간을 함께한 친구일 경우가 많다. 고마움을 직접 표현할 기회를 놓쳐버리고 후회하기 전에, 전화로나마 할머니의 사랑과 보살핌에 진심으로 감사 인사를 드릴 수 있어서 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2006년 10월 8일 

추석날 비록 손수 송편을 빚어먹지는 못해도 만두나마 내 손으로 직접 빚어 랄라랑 스톰에게 주고 싶은 마음에 올해로 3년째 추석에는 집에서 나 홀로 만두를 빚고 있다. 솔직히 이 만두라는 게 빚는 거는 일이 아닌데 문제는 만두소 만들기다. 손놀림이 빠르고 힘도 있으신 분들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는 가장 공이 많이 들고 시간도 두 시간 정도 소요되는 과정이다. 혼자서 버섯, 부추, 실파, 마늘, 숙주나물을 다듬고 당면을 미리 삶아 놓은 뒤에 채 썰어 다지고 또 다지다 보면 칼 질을 하는 내 손이 휘청거리기까지 한다. 마지막으로 김치, 두부, 숙주나물의 물기를 베보자기로 꼭꼭 짜는 과정은 그야말로 마지막 남은 힘을 모아 아등바등 온몸으로 수분을 빼내야 한다. 

부추만두와 김치만두용의 각기 다른 만두소가 담긴 커다란 유리그릇 두 개를 앞에 놓고 만두를 빚고 있자니 갑자기 울컥 눈물이 나려고 한다. 다름이 아니라 철없던 나의 지난 세월이 생각나서이다. 대학생 시절 나는 여름방학이 시작하자마자 매년 한국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우리 가족이 있었고, 무엇보다 내가 사랑하는 할머니가 계셨다. 집에 도착하면 할머니께서는 "우리 강아지 뭐 해줄까?" 하고 제일 먼저 물으셨는데, 난 정말 앞뒤 생각 안 하고 먹고 싶은 건 다 늘어놨었다. 우리 할머니표 김치볶음밥이나 계란말이부터 시작해 도토리묵, 식혜, 비빔국수, 김치만두 까지 정말 단숨에 먹고 싶은 건 다 말씀드리곤 했다. 

한국에 머무르는 동안, 난 매일 아침이면 너무 쉽게 먹고 싶은 그날의 메뉴를 말하고 외출하기에 바빴다. 그때는 친구들을 만나 함께 보내는 시간이 제일 즐거웠다. 그나마 여유 시간이 생기면 가족과 함께 보내기보다는 연극이니, 콘서트니, 전시회니, 쇼핑이니 하며 밖으로 쏘다니느냐, 지긋이 집에 엉덩이 붙이고 있었던 날은 많지 않았다. 외출하기도 귀찮을 만큼 무덥던 여름, 더위에 지쳐 에어컨 바람을 솔솔 맞아가며 집에서 책을 뒤적이고 있을 때, 우리 할머니께서는 부엌에서 종일 커다란 들통 가득 도토리 묵을 쑤고 계셨다. 혹시라도 묵이 튀어서 살이 데기라도 할까 봐 덤벙거리는 손녀딸은 아예 부엌에 들어오지도 못하게 하셨다. 전래 동화에서 등장할 만한 어마어마한 크기의 나무주걱을 손에 꼭 쥐고, 송골송골 땀방울 가득한 얼굴로 불 앞에 서서 휘~휘~ 묵이 엉겨 붙지 않아도 쉬지 않고 젓는 일은  젊은 사람이 해도 어깨가 뻐근할 정도의 힘든 일이다. 타국에서 공부하는 손녀가 한국에 있는 동안이나마 좋아하는 음식 뭐 하나라도 더 먹이고 싶으신 마음에 할머니는 그 고생을 몇 번씩이나 하셨다. 

김치만두도 그렇다. 난 사실 추석날 겨우 85개의 만두를 빚고 나서 그 후유증으로 오늘까지 이 틀 동안 약을 먹고 있다. 그런데 우리 할머니는 지금까지 몇 백개의 만두를 나를 위해 빚으셨는지 모른다. 세 자매 중 가장 음식 솜씨가 좋은 큰 이모는 할머니의 조수가 되기도 하고 코치가 되기도 하면서 함께 만두를 빚었다. 내가 좋아하는 김치만두를 맛있게 만들어 주고 싶은 마음에 두 분은 서로 번갈아가며 한분은 만두피를 만들고 또 한분은 열심히 만두를 빚으시고 그렇게 반나절은 보내셨던 것 같다. 그 많은 양의 만두소를 만들기까지 이모랑 할머니랑 얼마나 많은 시간과 정성을 쏟으셨는지 지금에서야 깨닫게 되는 나. 그래서 자꾸 눈물이 난다. 많이 해놨으니 배부르게 천천히 많이 먹으라던 할머니 말씀이 무색할 만큼, 난 겨우 대 여섯 개의 만두를 집어 먹는 게 고작이었다. 그럴 때면 "아나. 하나만 더 먹어봐라. 하나만!" 하며 내 손에 만두를 쥐어 주시던 할머니의 음성에 목이 멘다. 

미국에 살면서 그래도 추석에 내 딸 내 남편 먹이려고 이렇게 용쓰는 나를 우리 할머니께서는 몹시 대견스러워하시지만, 막상 할머니께서는 아직 단 한 번도 내가 만든 만두 하나 잡숴 보시지 못하셨다. 따끈하게 찐만두를 할머니 입에 호~호~ 불어넣어 드리고 싶은데, 할머니께서는 저 멀리 한국에 계신다. 오늘도 할머니는 전화를 드렸더니, "추석이라 네가 좋아하는 음식이 냉장고 가득한데, 뭐 하나 먹으려 해도 네가 눈에 밟히는구나. 멀리서 애 데리고 혼자 살림하랴, 공부하랴 얼마나 힘들까 하는 생각에 이 할미가 맘이 그렇다. 그래도 항상 잘 챙겨 먹어야 된다. 아휴... 여기 지금 네가 좋아하는 밤이며 대추며 떡이며 얼마나 많은데, 이거 주지도 못하고 할미 혼자 먹기도 맘이 안 좋아." 하고 말씀하셨다.

2006년 10월 8일 

추석날 비록 손수 송편을 빚어먹지는 못해도 만두나마 내 손으로 직접 빚어 랄라랑 스톰에게 주고 싶은 마음에 올해로 3년째 추석에는 집에서 나 홀로 만두를 빚고 있다. 솔직히 이 만두라는 게 빚는 거는 일이 아닌데 문제는 만두소 만들기다. 손놀림이 빠르고 힘도 있으신 분들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는 가장 공이 많이 들고 시간도 두 시간 정도 소요되는 과정이다. 혼자서 버섯, 부추, 실파, 마늘, 숙주나물을 다듬고 당면을 미리 삶아 놓은 뒤에 채 썰어 다지고 또 다지다 보면 칼 질을 하는 내 손이 휘청거리기까지 한다. 마지막으로 김치, 두부, 숙주나물의 물기를 베보자기로 꼭꼭 짜는 과정은 그야말로 마지막 남은 힘을 모아 아등바등 온몸으로 수분을 빼내야 한다. 

부추만두와 김치만두용의 각기 다른 만두소가 담긴 커다란 유리그릇 두 개를 앞에 놓고 만두를 빚고 있자니 갑자기 울컥 눈물이 나려고 한다. 다름이 아니라 철없던 나의 지난 세월이 생각나서이다. 대학생 시절 나는 여름방학이 시작하자마자 매년 한국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우리 가족이 있었고, 무엇보다 내가 사랑하는 할머니가 계셨다. 집에 도착하면 할머니께서는 "우리 강아지 뭐 해줄까?" 하고 제일 먼저 물으셨는데, 난 정말 앞뒤 생각 안 하고 먹고 싶은 건 다 늘어놨었다. 우리 할머니표 김치볶음밥이나 계란말이부터 시작해 도토리묵, 식혜, 비빔국수, 김치만두 까지 정말 단숨에 먹고 싶은 건 다 말씀드리곤 했다. 

한국에 머무르는 동안, 난 매일 아침이면 너무 쉽게 먹고 싶은 그날의 메뉴를 말하고 외출하기에 바빴다. 그때는 친구들을 만나 함께 보내는 시간이 제일 즐거웠다. 그나마 여유 시간이 생기면 가족과 함께 보내기보다는 연극이니, 콘서트니, 전시회니, 쇼핑이니 하며 밖으로 쏘다니느냐, 지긋이 집에 엉덩이 붙이고 있었던 날은 많지 않았다. 외출하기도 귀찮을 만큼 무덥던 여름, 더위에 지쳐 에어컨 바람을 솔솔 맞아가며 집에서 책을 뒤적이고 있을 때, 우리 할머니께서는 부엌에서 종일 커다란 들통 가득 도토리 묵을 쑤고 계셨다. 혹시라도 묵이 튀어서 살이 데기라도 할까 봐 덤벙거리는 손녀딸은 아예 부엌에 들어오지도 못하게 하셨다. 전래 동화에서 등장할 만한 어마어마한 크기의 나무주걱을 손에 꼭 쥐고, 송골송골 땀방울 가득한 얼굴로 불 앞에 서서 휘~휘~ 묵이 엉겨 붙지 않아도 쉬지 않고 젓는 일은  젊은 사람이 해도 어깨가 뻐근할 정도의 힘든 일이다. 타국에서 공부하는 손녀가 한국에 있는 동안이나마 좋아하는 음식 뭐 하나라도 더 먹이고 싶으신 마음에 할머니는 그 고생을 몇 번씩이나 하셨다. 

김치만두도 그렇다. 난 사실 추석날 겨우 85개의 만두를 빚고 나서 그 후유증으로 오늘까지 이 틀 동안 약을 먹고 있다. 그런데 우리 할머니는 지금까지 몇 백개의 만두를 나를 위해 빚으셨는지 모른다. 세 자매 중 가장 음식 솜씨가 좋은 큰 이모는 할머니의 조수가 되기도 하고 코치가 되기도 하면서 함께 만두를 빚었다. 내가 좋아하는 김치만두를 맛있게 만들어 주고 싶은 마음에 두 분은 서로 번갈아가며 한분은 만두피를 만들고 또 한분은 열심히 만두를 빚으시고 그렇게 반나절은 보내셨던 것 같다. 그 많은 양의 만두소를 만들기까지 이모랑 할머니랑 얼마나 많은 시간과 정성을 쏟으셨는지 지금에서야 깨닫게 되는 나. 그래서 자꾸 눈물이 난다. 많이 해놨으니 배부르게 천천히 많이 먹으라던 할머니 말씀이 무색할 만큼, 난 겨우 대 여섯 개의 만두를 집어 먹는 게 고작이었다. 그럴 때면 "아나. 하나만 더 먹어봐라! 하나만!" 하며 내 손에 만두를 쥐어 주시던 할머니의 음성에 목이 멘다. 

미국에 살면서 그래도 추석에 내 딸 내 남편 먹이려고 이렇게 용쓰는 나를 우리 할머니께서는 몹시 대견스러워하시지만, 막상 할머니께서는 아직 단 한 번도 내가 만든 만두 하나 잡숴 보시지 못하셨다. 따끈하게 찐만두를 할머니 입에 호~호~ 불어넣어 드리고 싶은데, 할머니께서는 저 멀리 한국에 계신다. 오늘도 할머니는 전화를 드렸더니, "추석이라 네가 좋아하는 음식이 냉장고 가득한데, 뭐 하나 먹으려 해도 네가 눈에 밟히는구나. 멀리서 애 데리고 혼자 살림하랴, 공부하랴 얼마나 힘들까 하는 생각에 이 할미가 맘이 그렇다. 그래도 항상 잘 챙겨 먹어야 된다. 아휴... 여기 지금 네가 좋아하는 밤이며 대추며 떡이며 얼마나 많은데, 이거 주지도 못하고 할미 혼자 먹기도 맘이 안 좋아." 하고 말씀하셨다.

2006년 10월 8일 

추석날 비록 손수 송편을 빚어먹지는 못하더라도, 만두라도 내 손으로 직접 빚어 랄라랑 스톰에게 주고 싶은 마음에 올해로 3년째 추석에는 집에서 나 홀로 만두를 빚고 있다. 솔직히 이 만두라는 게 빚는 거는 일이 아닌데 문제는 만두소 만들기다. 손놀림이 빠르고 힘도 있으신 분들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는 가장 공이 많이 들고 시간도 두 시간 정도 소요되는 과정이다. 혼자서 버섯, 부추, 실파, 마늘, 숙주나물을 다듬고 당면을 미리 삶아 놓은 뒤 힘을 줘서 채 썰어 다지고 또 다지다 보면 칼 질을 하는 내 손이 휘청거리기까지 한다. 마지막으로 김치, 두부, 숙주나물의 물기를 베보자기로 꼭꼭 짜는 과정은 그야말로 마지막 남은 힘을 모아 아등바등 온몸으로 수분을 빼내야 한다. 

부추만두와 김치만두용의 각기 다른 만두소가 담긴 커다란 유리그릇 두 개를 앞에 놓고 만두를 빚고 있자니 갑자기 울컥 눈물이 나려고 한다. 다름이 아니라 철없던 나의 지난 세월이 생각나서이다. 대학시절 매년 여름방학이면 한국에 갔던 나는 할머니께서 "우리 강아지 뭐 해줄까?" 하고 물으시면 정말 앞뒤 생각 안 하고 먹고 싶은 건 다 늘어놨었다. 난 우리 할머니 품 안에서 자란 자식이어서 그런지 뭐든 할머니께서 해주시는 건 다 맛있었다. 그래서 그동안 못 먹었던 할머니가 해주신 김치볶음밥이나 계란말이부터 시작해 도토리묵, 식혜, 김치만두 까지 정말 단숨에 먹고 싶은 건 다 말씀드리곤 했다. 

한국에 머무르는 동안, 난 매일 아침이면 너무 쉽게 먹고 싶은 그날의 메뉴를 말하고 외출하기에 바빴다. 그때는 친구들을 만나 함께 보내는 시간이 제일 즐거웠다. 그나마 남은 시간도 연극이니, 콘서트니, 전시회니, 쇼핑이니 하며 밖으로 쏘다니느냐 지긋이 집에 엉덩이 붙이고 있었던 날은 많지 않았던 듯싶다. 외출하기도 귀찮을 만큼 무덥던 여름날, 더위에 지쳐 에어컨 바람이나 솔솔 맞아가며 집에서 책이나 뒤적이고 있을 때, 우리 할머니께서는 부엌에서 종일 커다란 들통 가득 도토리 묵을 쑤시고 계셨다. 혹시라도 묵이 튀어서 내 살이 데기라도 할까 봐 덤벙거리는 손녀딸은 아예 부엌에 들어오지도 못하게 하시면서. 전래 동화에서나 등장할 어마어마한 크기의 나무주걱을 손에 꼭 쥐고 송골송골 땀방울 가득한 얼굴로 불 앞에서 서서 휘~휘~ 묵이 엉겨 붙지 않도록 계속 젓는 일은  젊은 사람이 해도 어깨가 뻐근할 정도의 힘든 일이다. 타국에서 공부하는 손녀 한데 한국에 온 동안이나마 좋아하는 거 뭐 하나라도 더 먹이고 싶으신 마음에 할머니는 그 고생을 몇 번씩이나 하셨다. 

김치만두도 그렇다. 난 사실 추석날 겨우 85개의 만두를 빚고 나서 그 후유증으로 오늘까지 이 틀 동안 약을 먹고 있다. 그런데 우리 할머니는 지금까지 몇 백개의 만두를 나를 위해 빚으셨는지 모른다. 세 자매 중 가장 음식 솜씨가 좋은 큰 이모는 할머니의 조수가 되기도 하고 코치가 되기도 하면서 함께 만두를 빚었다. 내가 좋아하는 김치만두를 맛있게 만들어 주고 싶은 마음에 두 분은 서로 번갈아가며 한분은 만두피를 만들고 또 한분은 열심히 만두를 빚으시고 그렇게 반나절은 보내셨던 것 같다. 그 많은 양의 만두소를 만들기까지 이모랑 할머니랑 얼마나 많은 시간과 정성을 쏟으셨는지 지금에서야 깨닫게 되는 나. 그래서 자꾸 눈물이 난다. 많이 해놨으니 배부르게 천천히 많이 먹으라던 할머니랑 이모 앞에서 난 사실 입이 짧다는 이유로 대 여섯 개 먹는 게 고작이었다. 그럴 때면 "아나. 하나만 더 먹어봐라!" 하나만!" 하며 내 손에 만두를 쥐어 주시던 할머니의 음성에 목이 멘다. 

멀리서 살면서 그래도 추석에 내 딸 내 남편 먹이려고 이렇게 용쓰는 나를 우리 할머니께서는 몹시 대견스러워하시지만, 막상 할머니께서는 아직 단 한 번도 내가 손수 만든 만두 하나 잡숴 보시지 못하셨다. 만두를 빚으면서 난 나의 이기심과 나의 오만과 그리고 받는 사랑에 익숙한 나의 뻔뻔함에 부끄러움을 넘어 자꾸 화가 났다. 따끈하게 찐만두를 할머니 입에 호~호~ 불어넣어 드리고 싶은데, 할머니께서는 저 멀리 한국에 계신다. 오늘도 할머니는 추석이라고 전화를 드렸더니, "추석이라 네가 좋아하는 음식이 냉장고 가득한데, 뭐 하나 먹으려 해도 네가 눈에 밟히는구나. 멀리서 애 데리고 혼자 살림하랴, 공부하랴 얼마나 힘들까 하는 생각에 이 할미가 맘이 그렇다. 그래도 항상 잘 챙겨 먹어야 된다. 아휴... 여기 지금 네가 좋아하는 밤이며 대추며 떡이며 얼마나 많은데, 이거 주지도 못하고 할미 혼자 먹기도 맘이 안 좋아." 

평소 할머니께서 미치겠다는 표현은 경박스럽다고 삼가라 하셨는데, 오늘은 정말 미치겠다. 할머니가 너무 보고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