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2월12일

서울은 한밤중일 시간에 엄마한데 전화가 왔다. 그동안 공부때문에 엄마와 긴 시간 통화를 해본지가 언제였는지 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스톰도 없고, 랄라도 없고, 혼자인 집에서 조용히 앉아 책을 뒤적이고 있는데 걸려온 엄마로 부터의 전화.

일상을 묻고, 서로의 안부를 묻고, 랄라와 스톰의 근황을 묻고, 아빠와 할머니의 안부를 묻고, 날씨는 추운지, 건강은 어떤지 묻고, 간간히 웃음이 오가고... 그렇게 시작된 전화 통화가 쉽게 한시간을 넘긴다. 그러는 동안 지난날의 추억들이 물처럼 엄마와 나 사이를 넘나들고, 커진 웃음소리 보다 더욱 큰 그리움이 내 마음에 밀려오고 다시 밀려간다. 예나 지금이나 내가 잘한일에는 엉덩이를 두들려 주는 엄마. 하나뿐인 딸을 위해 곁에서 열심히 응원해 주는 나의 영원한 치어리더. 우리가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고, 나의 학업에 대한 열정을 나누면서 나의 목소리가 점점 한 톤씩 올라가고, 자연스레 엄마 목소리도 나와 함께 올라가고 엄마 또한 즐거워 함을 느낄수 있다. 이토록 나를 자랑스러워 하는 엄마가 있었기에 정말 자랑스러운 딸이 될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할수 있었던 내가 있을수 있지 않았나 싶다.

색소폰에, 동창회에, 수영에, 골프에, 헬스에 요즘 엄마는 정말 바쁘게 하루를 보낸다. 틈틈히 맛있는 곳에서 식사를 하고, 나를 데리고 가지 못함을 아쉬워 하고, 아직도 아빠랑 다투고, 할머니한데 서운해 하고, 주위에서 이미 한 분 두 분 병원 신세를 지시게되는 것을 마음아파 하고, 전화를 끊을 때면 엄마가 늘 하는 말. 그래 한국은 언제쯤 나오니, 랄라가 너무 보구싶구나, 스톰은 언제 한국 출장을 온다니, 또 한번 밀려드는 그리움과 아쉬움으로 수화기를 내려놓는다.

너무 예쁜 엄마. 그래서 어릴적 부터 모든 엄마들은 우리엄마 처럼 인형같이 예쁜줄만 알고 살았던 나. 엄마는 얼마전 부터 내가 나이 먹는걸 너무 안타까워 하신다. 엄마는 자꾸 자꾸 젊어지는데, 딸인 내가 자꾸 자꾸 늙어가는것 같은 생각이 드시나보다. 이제는 같이 나가면 자매냐는 소리를 듣는 우리. 하지만 우리에게도 지금의 나와 랄라처럼 엄마와 딸로 비추어지던 시절이 있었다.

(사진 설명)

하단좌측: 큰이모가 다니던 화실에서 야외수업을 나간 날. 다른 언니들은 모두 물감으로 전체 그림을 그리는데, 나만 꼬맹이라고 혼자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리고 바탕만 물감을 사용하라는 말에 불공평 하다면서 왕심술이 나서 찍은 사진.

하단우측: 심술부리며 그린 그림을 잘 그렸다고 선생님께 칭찬도 듣고, 맛있는 점심도 먹고, 기분이 한층 좋아져서 엄마랑 다정하게 찍은 사진.

상단: 올 봄. 엄마 생일날. 엄마. 나. 랄라. 3대가 나란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