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모두들 ‘체’를 하나씩 갖고 오셨나요?

준비 안하신 분들은 빨리 아무 체나 가져오세요.

없으면 진도 못나갑니다.

지금, 제가 뭘하려는지 살짝 잊어버리신 분들을 위해

요점을 짚어드리지요.

지금, 우리는 ‘글자’가 아닌 ‘상황’을 영어로 옮기려 합니다.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

글자로 표현되는 그 생각 말입니다.

그걸 순간적으로 영작하는 것이 바로 ‘스피킹’입니다.

영작 따로, 회화 따로, 리스닝 따로...

영어는 그게 다 따로 국밥이 아닙니다.

영어 뿐만 아니라 모든 언어가 마찬가지죠.

여러분이 영어로 표현해야 하는 건 머릿속에 떠오른 글자들이 아니라

‘상황’입니다.

아시겠죠?

글자에 절대 연연해하거나 목숨 걸지 마십시오.

자, 너무나 친숙한 이 문장을 한 번 볼까요?

<어제 닥터 우즈한테서 진료를 받으려고 예약을 하긴 했는데

그 시간에 일이 생겨서 시간을 바꾸고 싶어서 전화했어요.>

이걸 한 번 눈으로 쓱 보세요.

그리고 이 글자들을 ‘상황’으로 인식하세요.

못하시겠다고요?

잘 안되시는 분들은 체를 꺼내 드세요.

저 글자들을 체에다 담으세요.

그리고 마구 흔들어 주세요.

마구 마구...

쌱쌱쌱...

그러면 밑으로 뭔가가 떨어집니다.

입자가 줄어든 고운 뭔가가 떨어집니다.

그게 상황입니다.

우리가 영어로 표현해야 할 바로 그것이죠...

뭐가 떨어졌나요?

닥터 우즈와 예약했는데 시간을 바꾸고 싶다...

자, 체 밑으로 떨어지지 못한...

다시 말해 아무 소용도, 필요도 없는 쭉정이들이

어떤 게 체에 그대로 남아 있나 볼까요?

이건 아무 미련없이 버려야 하는 쭉정이들입니다.

과감하게 내버리세요.

<쭉정이 1>

    어제

우리말로는 ‘어제 예약했다, 그저께 예약했다’ 등 시간을 언급하는 게

자연스럽습니다. 그 의도 속에는 ‘이미 예약을 해 둔 상태’라는

걸 암암리에 내비치려는 거죠.

무슨 말이냐고요?

사실은 ‘어제’라는 특정 시간이 아무 의미가 없다는 말입니다.

안 그런가요?

전화를 받는 리셉셔니스트에게 도대체 어제 예약을 했든,

그저께 예약을 했든, 일주일 전에 예약을 했든

그게 뭐가 중요한가요?

중요한 건 ‘예약을 한 상태’라는 겁니다.

그러니 ‘어제’는 체를 통과하지 못하고 쭉정이로 내버려야 합니다.

<어제 닥터 우즈한테서 진료를 받으려고 예약을 하긴 했는데

그 시간에 일이 생겨서 시간을 바꾸고 싶어서 전화했어요.>

<쭉정이 2>

그 시간에 일이 생겼다

역시 마찬가지로 심각한 쭉정이입니다.

아니, 일이 생겼으니 시간을 바꾸고 싶겠죠.

아무 일 없는데 전화 장난도 아니고 뭐하러 시간 바꾸고 싶다는

전화를 걸겠어요?

혹시, 미국인 친구나 아는 사람과 약속했다가 변경하거나

취소를 해야 할 경우...

이유를 꼭 대는 분들이 계시지 않나요?

“어머 어째요. 그 시간에 배달이 온대요.”

“멀리 사는 친구가 잠깐 들른대요.”

“병원 예약이 되어 있는 걸 깜박했어요.”

아주 친해서 스스럼 없거나 반드시 이유를 대야 하는 경우 말고...

영미 사람들은 굳이 이유를 대지 않습니다.

무슨 이유가 있으니 변경하겠지...이해하고 들어갑니다.

이것 역시 문화의 차이입니다.

프라이버시를 중시하는 영미문화에서 비롯된 거죠.

 

우리말은...

남의 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 남의 집 부부 침실 침대보가 무슨 색인지

다 알고 있어야 친하다고 생각하는 우리의 ‘정’ 문화에서 비롯된 거고요.

이유...

100% 모두 그런 건 아니지만...

어디나 예외는 있으니까요.

하지만 병원 같은 곳에 예약을 바꾸면서 굳이 이유를 대실 필요는

없습니다.

상대방은 그 이유 따위에는 아무 관심도 없으니까요.

고로, 여기서 ‘무슨 일이 생겼다’..역시 쭉정이입니다.

버리세요.

그럼, 뭐가 남죠?

뭐가 밑으로 떨어졌나요?

<닥터  우즈와 예약을 한 상태.

그런데 시간을 바꿔야 한다>

이거만 남습니다.

확인해 보세요.

자기 체에 걸러진 게 이게 맞는지 말입니다.

이게 잘 되어야 여러분의 영어가 바뀝니다.

물론, 이게 잘 되려면 훈련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이 갖고 계신 체는 제각각 품질과 제조업체와 크기와 모양이

다르니까요.

아마, 훈련과 노력을 거듭하다 보면 같은 체지만

걸러내는 실력이 달라질 겁니다.

흔들어대는 강도, 요령 등 앞으로는 버려야 할 쭉정이와

걸러내야 할 고운 ‘상황’이 확실히 구분될 겁니다.

그 훈련과 노력을 앞으로 저와 해 나가시겠지만

개별적인 훈련과 노력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거기에 대해서는 차차 말씀드리기로 하죠.

하던 거 마저하고요.

이왕 ‘체치기’ 하는 김에 여러분이 직접 해보시면 어떨까요?

제가 가르쳐드린 요령대로 체를 한 번 흔들어보세요.

저 글자들을 모두 끌어담고 흔들어보세요.

숙제라고 생각하지 마시고

아무 부담 없이 한 번 해보세요.

뭐든 눈으로 보는 것과 직접 해 보는 것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이미 그 훈련의 감은 앞서 숙제로 맛보기를 해 보셨을 겁니다.

기억하시죠?

금지 단어를 쓰지 않고 원하는 답 얻어내기...

(이번에는 금지단어 없습니다. 자유롭게 체치세요.)

자, 체치기할 때 잊지 마십시오.

글자는 쭉정이...

상황이 걸러내야 할 진짜 알곡입니다....